“정재승이 누구야?”
이 질문에 한마디로 답하기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베스트셀러 『과학콘서트』의 저자, 과학 대중화의 선두주자이다. 그 밖에도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서른일곱에 카이스트 교수가 된 천재과학자, 뇌과학 연구분야의 선두주자, 재능기부의 창시자, 팔로워 10만의 트위터리안 등등등. 게다가 엄청난 독서가에 영화면 영화, 음악이면 음악 모르는 것이 없다. 최근에는 소설책까지 펴내면서 소설가라는 새로운 명칭까지 얻었다. 이쯤 되니 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직접만나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재승이란 사람, 대체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 겁니까?”

산만한 과학자에서 통섭의 선두주자로

정재승 교수의 꿈은 어렸을 때부터 쭉 ‘과학자’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그의 일기장에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쓰여 있었다. 로봇에 빠져 있었던 어린 그는 빅뱅이론을 접한 후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평생 연구하면서 살리라 결심했다. 이후 그는 경기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하는 등 꿈을 이루기위한 길을 순탄하게 걷기 시작했다.

완벽한 ‘모범생’ 인생을 살던 그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실연’을 한 것. “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말 그대로 교과서적 삶을 살았어요. 술‧담배도 안했고 오락실도 대학 4학년 때 처음 가봤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실연을 하면서 ‘삐딱선’을 타게 된거죠.” 그에게 실연의 상처를 준 그녀를 통해 정 교수는 그가 고귀한 학문이라고 자부했던 천체물리학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천체물리학을 공부해 어떻게 취직을 하느냐’라는 우려를 했고 이것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를 계기로 ‘막살아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그는 대학원에 가서 거의 3년간을 방탕하게 보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돌연 연구분야를 천체물리학에서 복잡계 과학으로 바꾸고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석사 2학년때 일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우려는 더 깊어졌다. “차라리 천체물리학은 한국천체물리연구원이라고 갈 데라도 있지, 뇌를 연구해서 뭘 하려고 하냐는 말을 들었죠. 다들 ‘쟨, 선택하는 것마다 왜 저런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도 한국에서 취직할 수 있다는 기대는 아예 접었다. 컬럼비아 대학으로부터 교수 제안을 받았을 당시, 아예 한국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가 미국에 있는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바로 ‘통섭’이 학계와 사회에 새롭게 떠오르는 주제가 된 것이다. 더불어 과학자이면서 인문학,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글을 써왔던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옛날이라면 저 같은 사람은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 산만하다고 욕먹었을 텐데 갑자기 통섭의 아이콘이 되고,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람이 된 거죠. 고맙기도 하고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뇌과학자 정재승이 일러주는 취업비결

셀 수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을 한단어로 정의해줄 것을 부탁하자 그가 잠시 망설인 뒤 대답했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그게 저를 가장 잘 규정하고 있는 단어 같아요.” 

물리학자로서 그가 하는 일은 복잡한 현상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원리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물리학자들과 달리 그가 연구하는 대상은 자연계나 우주의 물질계 같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주관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과 그들이 모인 사회다. 특히 그는 사람들의 의사결정과 선택에 관심이 많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잖아요. 사람의 뇌를 통해 그에 대한 보편적인 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저의 일이에요.” 따라서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정 교수에게 사회 현상이나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는 관찰 대상이며 사회는 그의 커다란 실험실이다. “예를 들어 실연한 사람의 뇌나 배신당한 사람의 뇌도 저의 연구대상이에요. 특히 요즘 연구하는 주제는 사과를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예요. 그래서 참가자들을 일부러 화나게 만든 후에 사과 하는 실험을 하고 있죠.” 이글을 읽는 독자 중에 실연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정 교수에게 연락해 한번쯤 그의 실험대상이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이처럼 사람의 뇌에 통달한 정 교수라면 혹시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뇌의 영역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정 교수는 “삶이 묻어나는 질문 같네요. 네, 그런 뇌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저절로 귀가 솔깃해지는 대답이다. 그에 따르면 뇌에 있는 거울뉴런은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하는 기능을 한다. 면접을 볼 때는 특히 이 영역이 활발히 활동한다고 한다. “제가 하고 싶은 충고가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면접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면접관이 어떤 인간형을 바라고 있는지 추측해보는 거예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을 눈여겨보고.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눈밖에 나고 만다. 즉 면접관들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 색안경을 끼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을 생각해보고 그 방향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면접성공의 비법이다.

정재승처럼 되고 싶다면

정 교수를 방문한 날만 해도 그의 스케줄은 무려 8개.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일정이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많은 걸 다 할 수 있어요?”. “이건 비밀인데…” 낮게 깐 목소리로 정 교수가 속삭인다. “사실 제가 천재예요.” 이어서 그는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처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진짜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시간을 엄청나게 쪼개서 쓰는 편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까지 바쁘게 만들어 불편하게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더라도 “우리 정말 중요한 일만 합시다”라고 말한다. 시간을 매우 밀도있게 보내는 대가로 영화나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간관리 비법을 전수받아도 문제가 남는다. 즉 그처럼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엔 요즘 대학생들은 취직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 아닌 것에는 좀처럼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이와 달리 대학시절 정 교수는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무려 5개의 동아리를 했다. 영화동아리, 음악동아리, 철학동아리, 사회문제연구동아리 등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취직’에 대한 불안은 존재했다. 정 교수가 대학생이었던 때에는 광학이나 나노, 고체물리학이 유행했다. 카이스트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이 길을 택했고 그러면 전자회사나 반도체 회사에 안정적인 취직이 보장됐다. 이와 달리 그 당시 정 교수가 택한 분야는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길이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오히려 이것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카이스트 학부를 나온 사람 중에서는 처음으로 교수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당시 유행했던 분야를 택했다면 저는 카이스트 교수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정 교수는 ‘유행은 돌고 돈다’며 학생들에게 미래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충고를 건넸다. “세상의 직업들을 펼쳐놓고 무엇을 선택할까 고르려고 고민하기 보다는 그 직업들 사이에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직업을 만드는 일을 해보세요. 제가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라는 개념을 만들었듯이 여러분도 기존에 있는 것들을 융합해서 세상에 아직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정 교수는 이런 고민을 하기에 대학시절이 가장 좋은 때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덧붙였다. “왕성한 독서와 다양한 여행 그리고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가장 많은 영감을 주죠.”

많은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라기보다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생긴다. 다 조금씩 관심이 있는데 그 중 ‘평생 후회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을 결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는 이 고민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음을 보였다.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 중에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는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사진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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