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벗어나 관객과 만난 예술, 미디어 파사드

공간과 스크린에 갇혀 있었던 미디어 아트, 미술관을 탈출했다? 닫힌 공간에 싫증난 미디어 아트는 이제 벽을 뚫고 나와 도시 전체를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스크린이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곳에 있게 될 것이다”는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회장의 말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 ‘도시’라는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를 밟으며 살아가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에 대형 LED 스크린이나 프로젝션 등을 이용해 표현하는 미디어 아트다. 미디어라는 단어에 벽이라는 뜻의 파사드가 결합한 신조어이지만 사실 생소한 개념만은 아니다. 과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의 벽화를 보면 벽면을 장식하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예술 장르임을 알 수 있다. 김형수 교수(커뮤니케이션 대학원·디지털 미디어)는 “현대에 와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날로그 벽화가 미디어 파사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영상 예술가에게는 스크린이 캔버스인 만큼 캔버스의 사이즈를 어느 정도로 하며 무슨 매체를 이용할 것인가에 따라 미디어 파사드가 된다”는 것이 미디어 아티스트 이현진 교수(커뮤니케이션 대학원·디지털 미디어)의 설명이다. 아티스트는 작업을 할 때 그림이 가장 어울릴만한 캔버스를 선택하게 되고, 곧 그 캔버스가 공공장소의 화면이 된 것이다.


이 교수의 논문 「도시 미디어 스크린 경험의 확장: 거대한 캔버스가 되는 도시」에 따르면 과거 화가의 캔버스가 개인적 창작물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점차 도시 자체가 공유될 수 있는 캔버스가 되고 있다. 즉, 일방적으로 아티스트들이 ‘우리가 작품을 만들었으니 봐라’라며 뿌려내는 공간이 아니라 관객들이 직접 느끼고 만져보기도 하면서 관객들 속에서‘인터랙티브(interactive)’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도시 전체를 거대한 게임 공간으로 바꿔 건물에 투사된 미디어 파사드로 테트리스나 핸드폰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관객이 요청한 시간에 8비트 애니메이션을 튼다고 한다. 공간의 제약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누구나 참여자가 되게 하는 것이 미디어 파사드라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건물 벽면을 장식하는 모든 스크린이 미디어 파사드라고 할 수는 없다. “LED 조명의 연장선상에서 꽃잎 날리는 영상만을 반복하는 것은 사실상 빛 공해에 불과하다”라는 김 교수의 말처럼 진정한 미디어 파사드는 구체적인 미디어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특정한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장소성을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비쥬얼 스토리 텔링(visual story telling)’을 하는 것이 미디어 파사드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미디어 파사드의 사례는 지난 2008년 김 교수의 ‘문화콘텐츠와 영상’ 수업 과제였던 ‘디지로거가 되다’ 퍼포먼스다. 연희관의 외벽에 실시간으로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프로젝터로 비추고 음악을 재생해 새로운 디지털 영상 공간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9년 열린 ‘서울 빛 축제’에서는 광화문 광장의 외벽 곳곳을 디지털 영상과 음악으로 꾸며 광장 전체가 미디어 파사드 숲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보통 미디어 파사드는 이벤트성인 경우가 많지만 연중 내내 전시가 계속 되는 곳도 있다. 서울스퀘어의 외벽은 특정 시기에 맞춰 이벤트 영상이 전시되기도 하고, 예술가의 예술작품이 전시되기도 한다. 서울스퀘어 관계자 박선영씨는 “서울역은 전국의 사람들이 오가는 중요한 거점인데, 이런 서울역을 오고가며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서울스퀘어 외벽”이라며 “저녁이 되면 그곳에 거대한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는 시민들이 미디어 파사드를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미디어 파사드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강남 갤러리아 백화점 등에서도 이용된다. 이처럼 미디어 파사드가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을 이용해 선보이는 이유는 도심 속에서 미디어 파사드가 랜드마크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 안에서 하나둘 ‘미디어 숲’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와 관객이 미디어와 소통하고 있는 지금, 도심으로 뛰어나와 도시라는 캔버스 위에 펼쳐진 미디어 숲으로 걸어가 보자. 사운드와 빛의 향연으로 한층 밝아지는 도심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남혜윤 기자  elly@yonsei.ac.kr
자료사진  y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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