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공강 시간에 쉬려고 해도 쉴 곳이 마땅치가 않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창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아리 방이 없다.
B씨는 1학년 때부터 자주 과방에 갔지만 학과의 모든 학생을 수용해야하는 공간인 과방 한 개는 비좁기만 하다.
C씨는 학회 활동을 위해 방과 후에 강의실을 빌리려고 했지만 대학원 수업들로 인해 빌릴 수가 없었다. 이에 학술정보관 세미나실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이미 다 찬 상태였다.

현재 신촌캠은 단과대 16개와 학과 65개로 구성돼 있다. 중앙동아리로 등록된 동아리만 해도 72개고 중앙동아리에 속하지 않은 단과대 동아리와 학회까지 더한다면 우리대학교 내 자치공동체는 수백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에서 학교 내에 자치공간을 갖고 있는 단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부족한데 열악하기까지

생명대는 단과대 학생회실이 없는 상태고 이과대의 일부 학과는 공간 하나를 두 학과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동아리연합회 집행위원장 이민재(자연과학부·09)씨는 “동아리들 모두를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학교 측에 자치공간을 더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공간 부족도 문제지만 자치공간의 환경 또한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과대 학생회장 임경지(행정·08)씨는 “사과대 자치공간은 연희관 지하1층에 포진해 있는데 이중창이 설치돼 있지 않아 너무 춥다”며 “낙후된 자치공간의 상황이 학생들의 자치 활동 활성화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문과대 학생회장 윤애숙(국문·08)씨도 “고려대 교류반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우리대학교 과방에 비해 훨씬 넓고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0년에 만들어진 흑인 음악 동아리 'R.Y.U'는 창단 10년 만에 동아리 방을 갖게 됐다. 이씨는 “지난 2010년 9월 대표자 회의를 통해 2개의 동아리가 중앙동아리에서 제명됐고 이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R.Y.U에게 동아리방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R.Y.U 회장 현준혁(전기전자·10)씨는 “동아리방을 받게 돼 좋지만 연습하기에 너무 비좁다”며 “요즘에는 단과대에서도 강의실을 잘 빌려주려고 하지 않아서 학생회관의 공간을 예약해 사용하고 있지만 예약이 너무 많아 동아리들 간에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돌려막기식 대처?!

공간 부족은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대학교 대다수의 수업은 학생들로 강의실이 꽉 찬다. 교수 채용과 이를 통한 강의의 개설이 해결책이지만 강의실은 물론이거니와 교수에게 줄 연구실 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관재처 류필호 부처장은 “우리대학교는 다른 대학교에 비해 학생 자치공간이 많은 편”이라며 “강의실과 교수 연구실이 없어 신임 교원을 채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아리방만 늘어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수 연구실이 부족해 신임 교원의 경우 두 명이 한 방을 쓰는 일도 있다.

이에 대해 이과대 학생회장 이다솔(물리·08)씨는 “이용도가 낮은 공간을 조금만 개조한다면 자치공간을 추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과대는 과학원 컴퓨터실을 개조해 두 개의 자치공간을 만들려고 학교 측과 조율하고 있다. 사과대 학생회 또한 연희관 지하 1층에 방치돼 있는 공간을 학생 자치공간으로 재편하기 위해 사과대 학장과 논의하고 있다.

한편 학교 측에서는 학생 자치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접근할 것을 권하고 있다. 즉, 한 공간을 예약해서 사용하거나 한 공간을 두 동아리가 함께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 수, 금은 A동아리가, 화, 목, 토는 B동아리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 공과대 학생회장 장상석(컴퓨터·09)씨는 “동아리방은 학생 회의나 동아리 활동을 위한 공간 보다는 친목도모의 성격이 더 짙은데 학교에서는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동아리방 공유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사과대 부학생회장 허승규(정외·07)씨 또한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학교 측의 의견이 맞지만 학생들의 공간은 효율성으로 판단될 수 없다”며 “학교 측에서 학생 자치활동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치공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자치공간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몇 년 전에는 술을 마신 학생 둘이 동아리방에서 몸싸움을 벌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또한 2~3년 전에는 과학관 1층에 위치한 동아리방에서 만취한 채로 잠을 자던 학생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찰과상을 입었다. 이에 지난 2010년에 이과대에서는 학생 자치공간이 모여 있는 과학관 1층의 한 통로를 밤 11시에 폐쇄했다. 이과대 사무실 관계자는 “원래 과학관은 밤 11시에 폐쇄하기로 돼 있었는데 관리가 느슨해졌던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새벽에 학생들이 음주한 후에 자치공간에 출입을 하는 등 공간을 바람직하게 이용하지 않아 철저하게 시간을 엄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대부분의 건물은 밤 11시면 폐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에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책임을 질 수 없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 음주한 상태로 자치공간에서 잠을 자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장씨는 “OT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에 뒷풀이를 한 후에 학생들이 과방에서 자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씨도 “문과대 자치공간에서 잠을 자는 학생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재은(신학·10)씨는 “학생 ‘자치’ 공간인 만큼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제대로 관리하며 바람직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체득한 사회성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가 대학에서 배운 것을 실현한다. 이러한 사회성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자치공동체다. 학교가 자치공간에 대해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만 접근하는 것은 단기적인 시각이다. 학교는 신축하는 경영대학과 증축이 예정돼있는 위당관, 외솔관, 과학관 등의 건물에 학생들의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한편 포화상태인 학교 내의 공간 전쟁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의 태도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책임 없는 곳에 권리도 없다’는 말처럼 학생 또한 자치공간을 바람직하게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해인 기자 olleh@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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