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작곡가 A씨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A씨에게서 당황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A씨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내 노래는 요즘 노래들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고 발표했다. 오히려 그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어디 있냐”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는 가상의 상황이지만, 이런 모습이 왠지 낯설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요즘 가요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절 논란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더 이상 새로운 표절 논란에 놀라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표절은 아니겠지’라는 반응보다 ‘또야?’ 라는 반응이 대세를 이룬다.

이런 가요계의 현모습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표절 논란 곡들 중 실제 법정 판결에서 표절이라고 판결이 난 곡은 지난 2006년 MC몽이 발표한 「너에게 쓰는 편지」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논란이 논란으로만 끝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대중이 가지고 있는 표절의 기준과 법적인 기준은 다르다는 것이다. 표절이 의심되는 혹은 심지어 표절이 확실시 되는 것처럼 보이는 곡들도 일단 법적인 기준으로 표절이 아니다.

기준이라기는 너무 주관적인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복제, 방송, 전시 하는 등의 행위를 저작권 침해라고 보고, 그 중에서 무단으로 내용을 베끼는 것을 보통 표절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한 작품이 기존 작품에 의거해 작성됐다는 관계가 성립돼야 하며 양 작품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 실질적 유사성은 ‘3마디, 6마디가 유사하다’와 같은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요소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질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일반 청중의 입장에서 표절을 판단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런 표절 추정을 위해 저작권법에서 사용되는 방법이 객관적 기준 제시보다는 사실상 표절을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에 의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사하게 들리는 두 곡 사이에서 표절 판결을 내리기란 전문가들에게도 쉽지만은 않다.

또한 표절 관련 법적 기준이 대중들의 기대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표절 논란에 있는 곡들이 법정에 가는 일이 적고 실제로 법정에 간다고 하더라도 표절 판결이 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곡에 따른 저작권에 대해서는 친고죄가 적용되어 원작자의 소제기 없이는 표절을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설령 표절이 의심되는 곡이 있더라도 원작자가 소송을 하지 않는다면 이 곡은 표절이라고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원작자가 표절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해도 표절가수와 합의를 한다면 큰 논란 없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그래서 표절 논란이 일어도 일단 아니라고 잡아떼며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최소한의 법적 장치마저 부재

이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에는 표절 방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1990년대에는 ‘공연 윤리 위원회’(아래 공윤위)에서 ‘국내 창작곡의 표절 기준에 관한 규정’을 통해 표절곡을 걸러냈다. 이와 같은 규정은 법적인 강제성을 띄고 있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주도 하에 시행되던 공적인 감시였기에 작곡가와 가수들은 표절에 상당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표절 기준에 관한 규정은 공윤위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고 더 이상 이 규정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게 됐다. 현재도 2007년 문화관광부에서 만든 ‘영화 및 음악 분야 표절 방지 가이드 라인’이 있지만 이 또한 권고 사안일 뿐이고, 사실상 강제력을 가진 표절에 대한 별다른 기준은 없는 실정이다.

저작권법의 근본적 한계

이에 대중음악 평론가 박건태씨는 “사회적인 감시망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음악 전문가나 특정 기구가 표절을 걸러내지 않기 때문에 기준에 대한 논란이 많다”며 “따라서 표절을 해도 가수와 작곡가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어 박씨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표절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대중들은 표절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음악 표절이 예술 윤리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것에도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표절이 무엇인지 알고 이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더라도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표절에 대한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이 점을 생각해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동의 할 수 있는 뚜렷한 법적 기준을 명문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작권법에 따라 정의되는 표절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면 표절 문화 근절을 위해 단순히 법에 의존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표절에 대한 법적 기준 보다는 창작자와 대중이 표절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나라 가요계 수준에 걸맞는 표절의 사회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이재호 기자 20thc.boys@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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