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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면 뒤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패션회사 디자이너에서 앤디앤뎁 런칭, 그리고 뉴욕진출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김석원 디자이너
  • 주혜민 기자
  • 승인 2011.03.06 12:26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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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들이 서바이벌 형식으로 경쟁하는「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 3」가 케이블 TV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직설적인 심사평으로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 국내명품의류브랜드 ‘앤디앤뎁’의 대표 김석원 디자이너다. 그는 거의 매회 디테일*이 거의 없는 심플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의 셔츠와 재킷을 입고 출연한다. 그의 개인적 취향은 실제 디자인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단순하면서 로맨틱한 디자인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스타일은 그의 심사를 더 돋보이게 한다.

모범생, 옷쟁이를 꿈꾸다

“디자이너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를 꿈꿨냐는 질문에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모범생이었던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군인 혹은 정치인이 되고자 했다. 갑자기 인터뷰 장소 한 켠에서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던 김씨의 부인이자 ‘앤디앤뎁’의 이사인 윤원정 디자이너가 “웅변소년이었다”며 한마디 거든다. 이에 그는 “방송에서 심사할 때 목소리는 다 웅변을 하던 시절에 익히던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군인, 정치인, 웅변…디자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고등학생 때 락음악에 빠진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락밴드를 직접 구성해 공연을 다니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 즐거운 삶에 가치를 두게 됐다. 진로를 결정할 때도 자연스레 음악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바로 패션이었다.

그는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와 옷을 맞추기 위해 양장점에 가는 것을 즐길 정도였어요. 개인적인 성향이겠거니 생각하다가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러나 2대 독자인 그가 옷쟁이가 되겠다고 말하자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다. 약사인 할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인 아버지는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이 매우 비뚤어져 있었으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그 당시에는 특히 남자가 디자인한다고 하면 성적 정체성 마저도 문제 삼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새로운 발상이라며 저의 뜻을 지지해주셨죠.” 그는 어머니 덕분에 집안의 반대와 사회적 편견에 굴하지 않고 패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평생의 배우자와 앤디앤뎁 런칭

패션공부를 마치자마자 그는 지금의 아내인 윤씨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뉴욕의 한 의류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들은 당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꽤 높은 보수를 받아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활 주기가 단조로워지면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은 풍족했음에도 이내 지루해졌다. 부부는 자연스레 결혼할 때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자고 했던 꿈을 시작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에 그들은 늦기 전에 한국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에게 미쳤다고 했죠.” 뉴욕에서 쌓은 경력을 모두 버리고 그것도 IMF 때 한국으로 맨땅에 헤딩하러 가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우선 문을 열 수 있을만한 매장을 찾아봤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로드샵마다 해외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들로 넘쳐났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로드샵들은 텅 비어있었다. 김씨는 “당시 압구정에 동경하던 매장이 있었는데 그 매장도 문을 닫았었어요. 당장 부동산에 가서 그 매장을 빌릴 수 있는지 알아봤죠.” 새로 런칭하는 의류 브랜드가 단 하나도 없었고 기존에 있던 브랜드들도 규모를 축소하기 바빴던 시기, 김씨의 영어 이름인 Andy와 윤씨의 영어 이름인 Debbie를 합친 말인 ‘앤디앤뎁’은 바로 이 시기에 런칭했다.

한국 디자인의 새로운 시도, 미니멀리즘

당시 매장을 찾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어느 나라 브랜드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방가르드한 패션이 익숙해있던 사람들에게 간결·명료한 디자인의 앤디앤뎁의 옷들은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는 이에 “한국의 미니멀리즘*이 시작된 거에요”라며 “앤디앤뎁의 패션철학은 ‘로맨틱 미니멀리즘’”이라고 덧붙였다.

앤디앤뎁의 옷들은 대부분 심플하다. 그러나 가끔 독특한 디자인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김씨가 디자인을 할 때 건축이나 인테리어의 영감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 S/S 컬렉션 때 선보인 원이 계속 겹쳐지는 프린트는 옛날 할아버지들이 입던 등거리*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그의 기억에 저장된 모든 사물과 현상들도 역시 디자인의 영감이 됐던 것이다.

앤디앤뎁은 국내 명품 브랜드다. 그러나 다른 해외 명품들처럼 누구나 아는 브랜드는 아직 아니다. 이에 김씨는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이 있어야 해요. 계속되는 노력들이 쌓여 형성되는 우리의 역사가 언젠가는 명품을 만들거에요”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외국 디자이너들과 똑같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 디자이너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세계적인 한국 디자이너가 나와야만 해요.” 이를 위해 그는 성공을 보장받지는 못하지만 세계 패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으로 들어간 것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것보다 배는 힘들었지만 이익이 많이 나지는 아니었다. “힘들지만 저의 도전이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경험과 교훈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하고 있다.


디자이너 겸 CEO, 예술을 경영하다

그는『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 1부터 3까지 심사위원이면서 동시에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날카롭고 직설적인 심사는 의도치 않게 참가자들에게 비수를 꽂기도 한다. 이에 그는 “고생스럽게 미션을 수행하고 나오는 자리인데 가볍고 형식적인 평가는 도전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겠지만 진심어린 조언이니 알아주길 바랄 뿐이죠. 그런데 나 실제로는 무겁지 않고 소탈한데…하하하.” 웅변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의 웃음은 디자인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했다. “시류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어요. 잠시 여건이 어려워질 때도 디자이너는 포기를 몰라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또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기 일을 하기 전에 패션회사에서 먼저 배우면서 노하우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요즘은 고객들의 선택에 따라 신생 브랜드가 명품이 되기도 하고 명품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지기도 하는 시대다. 따라서 그는 패션디자인이란 ‘예술적 토대 위에 기초한 상업적인 학문’이라고 판단한다. 오래 가는 명품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예술적 측면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CEO로서의 비지니스적 측면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틈틈이 경영공부도 하는 그는 자신의 꿈을 말했다.

“고객들에게 한결같은, 20대가 40대가 돼서도 선호하는 브랜드로 남고 싶어요.”

*디테일 : 옷을 만드는 봉제과정에서 장식을 목적으로 이용되는 세부장식의 총칭
*미니멀리즘 :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 흐름
*등거리 : 등나무로 엮어서 적삼 밑에 입던 것

주혜민 기자 hallo@yonsei.ac.kr
사진 유승오 기자 steven103@yonsei.ac.kr

주혜민 기자  hall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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