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의 메커니즘을 벗고 주체로서 공생하기

 

 감옥에 갇힌 여자가 수감자들과 춤을 춘다. 그러다 남자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춤을 못 추게 되자, 그에게 전화기가 재앙이었다며 빨리 끊으라고 재촉한다. 친구가 보석으로 감옥에서 풀어주자, 여자는 그 친구와 함께 식당에 갔다가 여자를 괴롭히는 모든 남자를 독살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용의자가 돼 함께 차를 타고 도망친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하트 표시와 함께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가 그려진다.  

2010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예인 1위에 등극한 영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노래 ‘텔레폰’의 뮤직비디오다.

여성 자신에게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사회와 공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현하는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레이디 가가는, 그녀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남성을 찬미한다(hail)’라고 말한 것처럼 고전적인 의미의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노래와 춤, 그리고 독특하고 야한 패션과 화장으로 구현하는 ‘여성 해방’은 종래 페미니즘이 주창하던 어떤 구호보다도 더 큰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알게 모르게 사회에서 여러 자리들을 담당하며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사전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 중심적이고 여성 지향적인 의식 혹은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여성주의 담론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은 1960년대, 자본주의 또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로 인해 억압받고 있는 여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실천과 담론의 집합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페미니즘에서 주로 다뤄진 문제의식들은 성과 계급, 가부장제와 재생산 문제, 그리고 섹스와 젠더의 차이와 주체 같은 것들이었다. 특히 ‘성계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밀레트와 화이어스톤과 같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베버의 ‘가부장제’ 개념을 이용해 여성억압체계를 비판했다. 여성의 지위를 절대적 약자로 만든 사회 구조를 타파하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운동을 시작한 이유였다.

이렇게 시작한 페미니즘은 점차 시대와 공간이 변함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정말 연관돼 있는 개념인가에 대한 경험적 반증들이 생겨났는데, 이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 구조로 이해되던 남녀관계가 이제는 설명돼야 할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남녀관계가 일반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 개별 사례로 이해돼야 할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모두를 ‘우리’라는 표현을 이용해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 공통의 여성으로 이해했지만, 이 개념 또한 자신의 삶이 페미니즘의 일반화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여성들에 의해 비판됐다.

또한 우리 사회 속에 내포돼 있는 남녀 간의 성적 관계, 사회의 노동 구조, 그리고 사적이나 공적 생활 등이 남성의 지배를 가능케 한다는 메커니즘은, 역할의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더이상 살아남기 힘든 아이디어가 됐다. 기존의 가부장적 메커니즘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남성이 출산휴가를 이용해 육아를 담당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는 등 반증들 역시 존재하기에 단순히 억압의 구조로써 일반화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페미니즘과 우리 시대의 성담론』의 공동 저자인 최지현씨는 “당당히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지 않은 우리의 눈을 가지는 것, 독자적인 미의식을 창조하는 것이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의미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레이디 가가가 보여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아름다움의 추구는 여성의 해방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세상 속에서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개인이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대를 여는 페미니즘, 이것이 새로운 세상이 원하는 페미니즘이다.

김유진 기자  lcholic@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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