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를 통해 본 헤세의 종교

 

 ‘싯다르타는 귀를 기울였다. 강물 속의 그 모든 소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움에 애타는 탄식 소리, 깨닫는 자의 웃음 소리, 이 모든 것이 수천 갈래로 얽혀서 강을 이루고 있었고, 생명의 음악을 이루고 있었다. 이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었다.’

어떻게 헤르만 헤세와 같은 독일인이 이렇게 인도의 향료냄새가 가득한 작품을 낳을 수 있었을까. 이는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인도어문학자로 유명했던 어머니에게서 자란 것에 비롯된다. 헤세는 리자 벵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소년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거대한 서가에서 인도와 부처 등에 대한 책들을 보고 읽었습니다”고 고백했다.

헤세의 집안은 이렇듯 동양 문화가 깊이 물든 집안이었지만 뼛속까지 철저한 개신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신이 내려준 삶을 봉사와 희생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한 믿음에 따라 아들 헤세를 마을브론 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헤세는 신학교에서 강요하는 교리와 교회의 형식적 요소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헤세는 종교가 주는 신앙적인 삶과 종교의 의미는 사랑했지만,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한 교리는 종교의 본질적인 의미를 헤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종교를 찾아나섰고 그 열매가 바로『싯다르타』이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바라문**가정에서 태어나 그들의 풍부한 지혜와 지식을 접했지만, 언제나 인간이기에 생기는 욕구를 끊을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지위를 포기하고 거지처럼 떠돌면서 명상과 단식을 하는 사문(沙門)***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으로 윤회의 굴레에서 나올 수 없었다. 부처 고타마의 설법을 들어도 그것이 진리라는 것은 느끼지만 자신의 것은 아님을 느꼈다. 결국 싯다르타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모습을 인정하고 속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속세의 삶을 살아가는 중에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인간세상이라는 새장에서 죽어가는 새와 같다고 느낀다. 결국 싯타르타는 속세의 삶도 접는다. 그리고 바주데바라는 뱃사공의 조수로 강가에서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을 얻고 그제야 미소를 띄우게 된다.

전북대 독어교육학과 박병도 교수는 “헤세가 『싯다르타』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헤세만의 독자적 신앙이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서는 인도의 다양한 사원이나 부처 고타마를 가 나온다. 이로 인해 작품은 마치 불교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는 곳은 강가라는 것을 보면 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보는 도교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양탄자처럼 짜여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결국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를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어떤 한 종교를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며, “인간의 언어는 불교와 도교, 그 겉모습을 가르지만, 헤세는 그 종교들이 공유하고 있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좌표를 보이고자 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좌표는 싯다르타가 친구에게 마지막 고백을 할 때 드러난다.

“지혜란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네. 지혜는 어떤 면에서 봐도 같은 모습을 띄고 있지만, 언어는 그 단면만을 전할 수 있다네. 사상과 말로 표현된 진리는 그 전체의 단편적인 조각에 불과한 것이야.”

헤르만 헤세는 종교의 ‘완성’에 대한 열망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각종 인간의 언어와 우상은 거부했다. 그는 하나의 ‛신’을 인식한다거나 믿는 일 없이, 또 어떠한 교리에 대한 의지 없이 자기 자신의 독자적 힘으로 자아를 완성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종교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이처럼 반어적이고, 반교리적인 태도로 종교적 체험을 추구하는 헤세를 가르켜 사람들은 ‘신비주의적 종교자’라고 불렀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를 집필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종교 없이는 살지 않았으며, 종교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생동안 교회 없이 살아왔다.” 


*옴: 고대 인도에서 종교 의식 전후로 암송하던 신성한 음절
**바라문: 브라만의 다른 말로 인도의 네 계급 중에 종교를 주관하는 가장  높은 계급
***사문: 출가해서 수행하는 사람의 총칭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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