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학년도 연세문화상 (윤동주 문학상-시분야) 심사평

 

정 명 교

 

한지혁의 「오래된 배」, 「스물」, 「기억 속의 너만이」는 젊은이의 방황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는 그 이상이다. 손선혁의 「鬪病」, 「반달」, 「벙어리 시인」 등은 감정에 정직한 시다. 감정에 정직하다는 것은 감정을 그냥 노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진실성을 계속 되묻는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그것을 다양한 거울들에 비추어보는 대신에 감정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감정은 실감을 상실하고 관념화된다. 류설화의 「겨울나무」, 「비(雨) 와 비(悲)」, 「강물」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썩 세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데 그 멋진 말들이 생각과 감정의 상투성에 휘말려 단순한 수사적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해준의 「햇살의 해저에서」, 「화투연」, 「분자적인 개」 등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의 집요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다만 생각이 큰 관념들에 매달린 채로 그 내부로 섬세한 촉수를 들이밀질 못하고 있다. 「우산마을 여인숙」, 「냉장고」, 「불두화」 등을 투고한 박석재는 시적 감수성을 타고났다. 그 감수성은 아직 세상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가 민담의 수준에서 떠돌고 있다. 정상혁의 「일필휘지」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함께 투고한 「선풍기」, 「금슬」에서도 드러나지만, 말없는 물상에서 곡진한 삶의 내력을 읽어내고 그것에 강력한 열정의 에너지를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사소한 사물에서 존재의 의지를 캐내는 행위는 한국 현대시에서 매우 흔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칫 삶을 과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점을 유의하며 정진하기 바란다. 당선을 축하한다.

 

 

 

2010학년도 연세문화상(박영준 문학상-소설분야) 심사평

 

성 석 제

 

손에 넘어온 12편의 작품에 이렇다 할 공통점은 없었다. 일단 호의적으로 느낀 작품들은 글쓴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쓸 거리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산문이 아니라 소설이어서 그렇다. 소설은 근본적으로 허구이고 작품은 현실을 허구라는 효모로 발효시키고 부풀게 한 빵처럼 만든 것이다. 빵은 독자에 의해 읽히면서 현실로 재편성된다. 현실을 발효하게 하는 데는 정확하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 살고 있는 곳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지만 부풀게 하는 데는 독자를 흡인하는 상상력과 공감하게 할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하다. 그런 수준에 도달한 작품은 아쉽게도 많지 않았다.

당선작은 현실과 아주 먼 곳에 있는, 그렇지만 그 역시 독자에게 읽히는 순간 현실로 편입되는 종류의 작품이다. ‘사람들 인격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나빠지고, 인류의 인격이 말에 드러나면서 시작된 먹구름과 먹물비 현상’이 일어나는 가상적인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부풀게 하고 들어올리는 소설이다. 사람들이 말을 조심하다 못해 말을 못하게 되면서 ‘산 입에 거미줄을 치게’ 되었는데 그 거미줄을 친 거미가 ‘기생거미’라든지,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는 현실의 속담을 끌어들이는 재치, 힙합으로 편협하고 강고한 권력에 저항하고 오히려 먹구름과 먹물비를 줄이게 한다는 역전의 발상은 아주 재미있다.

재능이 넘치는 새로운 작가를 발견한 듯해서 매우 기껍다. 다른 분들도 분발해서 아직 채 눈을 드러내지 않은 각자의 재능으로 세상을 부풀게 해주기 바란다.

 

 

 

2010학년도 연세문화상(오화섭 문학상-희곡분야) 심사평

 

이 경 원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희곡 부문에서는 출품작이 많지 않았다. 이 작품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여전히 인간소외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족>은 신용불량자인 아버지와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편의점 알바를 하는 동성애자 아들이 그려내는 가족의 모습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모두 불만과 짜증이 일상이 되어버린 ‘불행한 가족’의 표본이며, 이들이 마지막에 시도하는 용서와 화해마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런데 주제 자체는 공감이 가지만, 대사가 너무 산문적이며 극적 반전도 독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밋밋한 느낌을 준다. <개같이 행복한 나날들> 역시 역설적인 제목이다. 재일교포의 소외와 차별이라는 정치적인 주제를 인간과 짐승의 차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와 중첩되게 구성한 작품으로, 작품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참신하지만 다소 진부한 대사와 반복적이고 산만한 플롯이 마음에 걸린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 <라면 먹는 두 사람>은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지하단칸방에서 절망과 체념 속에 살아가는 두 젊은 남녀의 만남을 스케치한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소외의 문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의 삶에는 그 어떤 구원의 희망이나 변화를 향한 제스처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들이 끼니로 때우는 컵라면처럼 철저하게 인스턴트이며, 사랑과 섹스마저 그냥 배설일 뿐이다. 극중극과 플래시백의 형식, 압축과 상징으로 가득한 대사, 그리고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올 법한 미장센의 디테일한 묘사가 이처럼 암울하고 절박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리얼리즘과 부조리극의 적절한 결합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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