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살펴본 쇼팽 인생 속 파리 이야기


파리는 낭만의 도시다. 세느강 위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에펠탑과 유람선, 그리고 태양에 반짝이는 수면은 “파리에서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옴니버스 영화『사랑해, 파리』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프레데릭 쇼팽은 그의 음악과 삶을 통해 이 도시 파리에 낭만이라는 색채를 덧입혀주고 떠나갔다.

올해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있었다. 영산아트홀에서도 지난 8월 「쇼팽의 로맨틱속으로」 공연이 열렸다. 공연에 참여한 로고스 앙상블의 대표 추계예대 피아노과 전경주 교수는 “쇼팽은 ‘피아노의 신’이라는 별칭답게 39년이라는 짧은 세월동안 너무나도 아름다운 곡들을 남기고 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폴란드 서민들의 춤곡인 마주르카부터 귀족적인 왈츠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 예술가였다는 것이다.

1810년 폴란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쇼팽은 태어났다.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음악을 배우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스무살에 국외로의 진출을 결심하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다. 그가 빈으로 간 그 해, 폴란드에서는 독립을 위한 바르샤바 동란이 일어나고 쇼팽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됐다. 애국자였던 쇼팽은 혁명에 참여하기 위해 돌아가려 했으나, ‘음악인은 음악으로 조국을 도우라’는 지인들의 권유를 듣고 돌아가지 않았다.

파리에 살게 돼서도 쇼팽은 “나는 순수한 마조비아* 사람이다”라고 말할 만큼 조국인 폴란드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폴란드의 민속음악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를 예술로 형상화하는 등, 음악활동을 통해 폴란드를 잊지 않았다. 그런 그를 폴란드도 사랑해, 폴란드의 가장 큰 공항의 이름을 ‘바르샤바 쇼팽 공항’으로 지었다. 또 폴란드의 혁명군이 전멸되기 바로 전날까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기원하는 의미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하기 전 쇼팽의 폴로네즈를 틀어주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도 파리에서 살면서 파리의 공기를 자신의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쇼팽을 기리는 여러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로 진행된「쇼팽특집」에  참여했고 ‘한국의 베토벤’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유영욱 교수(음악대피아노)는 “그 당시 파리는 지금의 뉴욕과 같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말했다.  쇼팽이 살던 19세기 초반 파리에는 살롱 문화가 매우 발달했었다. 당시 사교계 인물들은 지식수준이 매우 높아 음악 이론에도 박식했다. 이들은 심지어 쇼팽, 리스트와 같은 작곡가들의 곡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정도였다. 여러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연주하고,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살롱에서 이들은 사교계 문화를 형성해 활발하게 교류했다. 작은 나라 폴란드에서 온 20대 초반의 젊은이 쇼팽은 폴란드 민족의 밝은 전통 음악에 살롱에서 있었던 여러 음악가들과의 교류에서 우러나온 경험을 더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파리에서의 살롱문화는 쇼팽의 음악이 깊어지고 고급스러워지는 데 기여한 것이다.

쇼팽의 음악은 일반 대중에게서 ‘살롱 음악’이라고 비하되기도 한다. 그의 음악을 말하는 ‘발라드’라는 뜻처럼, 쇼팽은 시적이고 감성적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음악이 현대음악과 같은 대범한 형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음악과는 다르게 듣기에 편하고 아름답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뷔시가 쇼팽의 음악을 자신의 음악적 토대 중 하나로 연구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바로 쇼팽이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고 유 교수는 말했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 그리고 그 화려한 도시 속에서 조국을 그리워했던 젊은이 쇼팽.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파리에서 폐병으로 쓸쓸한 임종을 맞은 그는 파리와 폴란드를 동시에 살아간 사람이었다.

마음 속 조국에 대한 사랑에 파리가 주는 문화적 풍부함을 입힌 그의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듬어지고 그 깊이가 깊어질 수 있었다. 삶을 ‘사랑과 애국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쇼팽의 인생을 피아노의  선율로 직접  느껴본다면 그 감동은 분명 기사 하나로  전할 수 있는것 이상일 것이다.

*마조비아 : 폴란드의 지명. 쇼팽이 태어난 주(州)의 이름이다. 



김유진 기자 lcholic@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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