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활달한 성격에 원만한 교우 관계를 갖고 있던 20대 김모씨는 장기간 동안 어학연수를 떠났다. 하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온 김씨는 좀처럼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취직자리도 생각만큼 잘 구해지지 않았다. 자신이 점점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주 폭식을 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녀의 몸무게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김씨의 우울증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결국 그녀는 친구들과 연락도 끊고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생활하기 시작했다.

젊은이여, 무엇이 그대를 괴롭히는가?


대한민국 20대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질병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이나 당뇨 같은 질병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질병부담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정답은 ‘우울증 등 신경정신질환’이다. 이 보고서는 울산대 의대, 서울대 의대, 고려대 의대 연구팀이 한국인 120만 969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140여개 질병에 대해 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다. 또한 서울시 정신보건 센터에서 2010년 서울시 대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1명 정도가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유독 20대에게 우울증이 많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이정석 전문의는 “20대는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으로 진입하는 초기 단계로, 갑작스럽게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되면서 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는 누구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20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많은 변화와 좌절을 경험한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대인관계의 범위도 달라지고 활동영역도 넓어진다. 하지만 생각만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고 이것이 급격한 자신감 저하로 이어져 20대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20대 우울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구직난이다. 건강포털 코메디 닷컴이 2008년 2월 대학생 6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대학생 중 20%가 그 원인으로 취업난을 꼽았다고 한다. 이어서 성적(19%), 이성문제(14%), 금전문제(14%)가 뒤를 이었다. 서대문정신보건센터 우지연 팀장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경쟁이 치열한 요즘 사회에서 ‘취업 우울증’을 호소하는 20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대학교 학생들의 경우,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지나친 완벽주의와 대인관계 부족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우리대학교에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밝힌 우팀장은 “그 때 찾아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나친 기준이나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주위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상담을 받았던 학생들 중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이 우울증에 영향을 준 것이다.

마음의 감기는 저절로 낫지 않는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20대의 대부분은 치료 받기를 꺼려 병을 방치한 채 악화시킨다. 우울증 경험이 있는 20대 중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고작 4%에 불과했다. 혹시나 남의 눈에 띄어 체면이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게다가 혹시 취업에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나 약물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정신과로 향하는 걸음을 더욱 망설이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편견에 불과하다. 주은선 정신보건 간호사는 “진료기록이 남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본인의 동의 없이는 열람이 불가능한 자료다. 만약 정신과 진료 사실을 근거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이는 법적으로 고소, 고발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신과 약을 먹으면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걱정도 기우라고 할 수 있다. 처방되는 약들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감안해 최대한 맞춤 처방하는 것이고 대부분 부작용의 정도가 매우 약한 안전한 약물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2개월 내에 치료될 확률이 70~80%에 이르는 질환이다.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주변의 관심과 사랑만 있으면 쉽게 치료될 수 있다는 점에서 20대 우울증의 조기진단 및 치료는 중요하다. 주 간호사는 “우울증은 뇌의 질환으로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달라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반드시 전문가의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처음에 언급된 사례에서 김씨는 그 후 자신의 변화에 문제를 느끼고 상담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김씨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여러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김씨는 그 후 꾸준한 약물치료를 통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만약 김씨가 그 때 병원을 찾지 않았다면 우울증이 점점 악화되다가 자살에 이르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우울한가? 혹시 별다른 이유 없이 2주 이상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지는 않는가. 어떤 노력으로도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으며 이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어지고 수면장애, 소화장애까지 유발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혼자서만 끙끙대지 말고 당장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자.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