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기획 '20대와 집'



“침침한 골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 낙후된 건물들. 신촌이 싫어요”

신촌 주변 지역에서 적절한 주택을 발견하지 못한 장수연(독문·09)씨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아현동 일대에 자취방을 잡았다. 신촌보다 훨씬 싼 값에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 이는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거비와 턱없이 부족한 주택 공급에 수많은 연세인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가운데,「연세춘추」에서 우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거 실태에 대한 설문을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10월 12일부터 29일까지 18일동안 진행됐으며 415명의 연세인이 이에 응했다.

연세인의 주거 실태를 진단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연세인 중 48.4%에 해당되는 202명의 학생들은 현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중 81.2%의 학생들이 현재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답해 아파트가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거주형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이들의 주거지 규모는 ‘30~40평’이 39.3%로 가장 많았으며 ‘40~50평’이 23.4%를 차지했다.



한편 가족과 떨어져 사는 213명의 학생 중 75.6%는 자취를 하거나 하숙집,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학내·외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연세인은 23.5%였다.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은 매학기 초 학내 기숙사를 신청하지만, 신입생 위주 선발 원칙과 낮은 수용력 때문에 대부분의 재학생들은 선발되지 못한다. 실제로 특수 기숙사(의치간, 고시생 전용)를 제외하고 무학1·2학사는 전교생의 단 6.22%(996명)만 입사할 수 있는 미미한 수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은 주로 하숙이나 자취 등의 주거형태를 택할 수밖에 없다.

타지역보다 값비싼 방세에 환경 고려할 여유 없어

자취방, 하숙집, 고시원 등에서 살고 있다고 답한 학생 중 ‘5평 이하’에서 살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40.4%로 가장 높았고, ‘5~10평’이 32.9%로 그 뒤를 이었다. 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응답자 중 (기숙사생 제외) 10.2%만이 ‘전세’로 주거비를 지불하고, 절반이 ‘월세’, 나머지는 ‘보증부 월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들의 월세 비용은 ‘40~50만원’이 29.6%로 가장 많았고, 보증금을 지불하는 학생 중 ‘500만원 초과 1000만원 미만’을 지불한다는 응답이 37.1%로 제일 큰 비율을 차지했다. 창천동 D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신촌 지역의 집값에 대해 “이곳은 특히 상업화된 지역이라 다른 지역에 비해 같은 5평이라도 최소 5만원에서 최대 10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수요가 공급을 훨씬 웃돌기 때문에 집값은 매년 올라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격이 높다보니 학생들이 주거환경의 질적인 측면까지 고려할 여력은 없다. 실제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학생 중 26.1%가 ‘통학거리’, 23.3%가 ‘가격’을, 현 주거지를 선택한 이유로 꼽았다. 입학 이래 자취, 하숙, 고시원 생활을 모두 경험한 이충우(국문·05)씨는 “집 규모뿐만 아니라 학교와의 근접성, 식사, 시설 등을 고려하면 학교 주변에서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집을 구하기란 너무 어렵다”며 지난 5년간 신촌 일대를 전전한 사정을 밝혔다. 윤정숙 교수(생과대·주거환경)는 신촌의 주거환경을 “매우 협소한 면적의 공간에서 일조, 난방, 소음공해 관리가 거의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라 진단하고 “이러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건강하게 학업에 몰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자녀들 집값은 오르고, 우리 집 가세는 기울고

이러한 가격 부담은 학생들에게는 물론,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고 응답한 연세인의 60.8%가 ‘가족’의 지원을 받아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는 반면, ‘본인’이 부담하는 비율은 4.7%에 그쳤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통해 어느 정도 보조적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이들 중 71.7%의 응답자가 주거비를 포함한 한 달 생활비로 ‘50~100만원’이라 꼽아 학생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 2009년 신림동에서 머물렀던 정대현(정보산업·06)씨는 “이제 학생들의 주거 형태에서도 빈부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며 “전반적으로 원룸이나 좋은 자취방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부모를 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은 “2000년대 내내 부동산에 돈이 묶여 일자리는 없고 주거비와 물가가 급등한 상태에서, 대학생들이 자력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해결하기란 턱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열악한 주거상황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전체 응답자의 만족도는 높게 나타났다. 현재 자신의 주거지에 대한 만족도를 10점 척도를 기준으로 물었을 때 55.6% 정도의 학생들이 ‘8점 이상’이라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족과 함께 살며 통학하는 학생들의 영향으로 평균치가 상승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체 학생들 중 현 주거지에 대해 ‘불만 없음’이라고 답한 비율은 12.2%뿐이었다.

현재 집값에 대해 415명의 전체 응답자 중 186명이 ‘높다’, 114명이 ‘매우 높다’고 답해 총 72.3%의 연세인이 부동산이 과대평가됐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1인 주거 규모로 적정한 평수를 묻는 질문에 ‘5~10평’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1.7%로 가장 많았고, 36.6%가 ‘10~15평’이라고 답해 그 뒤를 이었다. 또 응답자의 40.7%가 ‘20~30만원 대’가 1인 규모 주거지의 가장 적절한 가격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D부동산 관계자는 “10~15평의 방들은 가격 문제는 차치하고 시장에 거의 나와있지도 않다”고 밝혀, 학생들의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연세인의 선언 “특단의 주거 대책을 강구하라”

정부차원의 부동산 개입이 필요하냐고 묻자 86%의 응답자들이 ‘매우 그렇다’, ‘어느 정도 그렇다’고 답했다. 또 주관식으로 정부 차원의 대학생 주거 정책의 개선방향을 묻는 질문에 197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는데, 이 중 105명이 ‘기숙사 증축 혹은 임대아파트 등을 활용한 충분한 주택 보급’을 꼽았다. 임대주택 개발의 필요성은 학계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사항이다. 윤 교수는 “금전적 지원보다는 공동생활공간을 활용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주택의 설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선 부소장 또한 “향후 대학생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싱글 남녀 등 1인가구가 급증할 것을 고려하면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공공임대나 전세 주택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연세대의 경우 상암 DMC 인근 부지 등에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주택 단지를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총학생회(아래 총학)는 지난 1학기 ▲자취방 보증금 저금리 대출 ▲대학생 임대 주택 건설 등을 추진했지만 각각 학생들의 낮은 신용도와 부동산 가격 부담 등의 이유로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6월, 지방선거 시기에는 대학생 주거문제에 대한 사회적 이슈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1천 명 이상의 재학생들이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며 서울시, 서대문구에 주거 문제의 대책 마련을 강구했다. 이에 대해 선 부소장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라며 “지금껏 뉴타운 개발 등에서 대학생들과 서민들이 무기력하게 내몰리기만 했지만 이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학은 또한 생활협동조합 혹은 학교 기금으로 주거관련 대출기금 마련과 기숙사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문서화된 협의 사항이 없고 총학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해 이 사업들의 실질적인 이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부총학생회장 권지웅(기계·07)씨는 “주거권과 관련 사업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48대 총학생회 선본들에게 주거권 관련 공동 공약을 제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어 권씨는 “주거문제가 본래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만큼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영빈 기자 yblee90@yonsei.ac.kr
 사진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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