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학과제 전환, 학내 자치공동체를 돌아보다 / 공과대·이과대·생명대·생과대

 


#1
학번대표로부터 문자를 받은 연돌이. [이번주 금-토 ○○과 기엠티가 있습니다. 참가하실 분 금요일 아침 10시까지 독수리상 앞으로 모여주세요!] 연돌이는 OT, 새터와 같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독수리상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헉. 이건 뭐지?’ 독수리상 앞에는 7명이 조촐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니…. 당황한 연돌. ‘아니, 왜 다들 모이지 않는 거야?’

#2
문과대 독사반 09학번인 세순이는 이번 학기 중문과 전공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독사반은 독문과 후배를 받는다는데…. 세순이의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속한 중문과 행사에 가야 하나, 우리 반과 연계하던 독문과 새내기를 챙겨야 하나? 아니, 왜 하필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야!’

#3
07학번 춘돌이는 전역 후 설레는 마음으로 복학 신청을 하고 1학기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 친구, 후배들이 보고싶은 춘돌이. 공강시간이 되어 반갑게 반방 문을 여는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춘돌이의 반방은 ○○과의 과방으로 바뀌었던 것! ‘아니, 그럼 우리 반은 어디로 간 거지?’



지난 2008년, 2010년부터 학과단위 모집제(아래 학과제)가 시행될 것이 확실시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당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입학처도, 차기 입학생들도 달라진 제도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했겠지만, 누구보다 당황하고 바빠진 것은 바로 각 단과대 자치공동체였다. 학부제 시행 당시, 모든 자치활동은 ‘반’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학과에 소속되기 전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학생들은 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했고, 관계를 맺어나갔다. 그러나 학과제 개편을 맞이하며 반은 사라질 운명을 맞았고, 모든 자치활동을 운영하는 인력과 역량을 과와 함께 하거나 넘겨줘야 할 상황에 처했다. 과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과학생회는 그간 반과 분리된 상태로 운영돼 그 입지가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신입생을 맞이하고 큰 규모의 자치 행사를 주도하기에 과학생회는 인력도 역량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학과제와 학부제, 과와 반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에 앞서 이는 학내 모든 공동체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새로이 입학하는 학생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음의 기반과 테두리를 만들어주던 것이 바로 자치공동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반이 흔들린다면 향후 대학사회의 공동체 문화 역시 설 곳을 찾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기 쉽다. 그렇다면 학과제 개편 8개월째를 맞이하는 지금, 각 단과대 자치공동체는 어떤 모양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정문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살펴보자.

 

1. 소학부제 실시로 아직은 반체제인 공과대, 과학생회·학우회와의 연계는 좀 더 논의해야
2. 학과제 개편으로 반이 증발해버렸다? 갈 곳 잃은 이과대 전공진입생
3. 생명대, “교수님은 학과제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지금도 편해요!”
4. 생과대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과문화 정착의 첫걸음 내딛기

(단과대 이름을 클릭하면 해당 단락으로 넘어갑니다.)
(문과대, 사과대, 상경대는  “군대갔다왔더니 반이 사라졌어요!”  -(2)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학부제 실시로 아직은 반체제인 공과대, 과학생회·학우회와의 연계는 좀 더 논의해야


공과대는 지난 2008년 3반이 생명대로 소속을 옮겨 현재 11개 반체제로 운영된다. 그러나 학과 체계는 신소재공학과, 화공생명공학과, 전기전자공학과, 정보산업공학과, 컴퓨터과학과, 건축공학과, 도시공학과, 토목환경공학과, 기계공학과의 9개 과로 이뤄져있어 과와 반의 일대일 연계가 어렵다. 더군다나 학과별로 인원수가 많게는 두 배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반 단위 분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과대는 지난 2007년 소학부제 실시 이후 학부가 학과 수준으로 세분화 돼 일부 반을 제외하고는 반과 과의 연계가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반학생회와 과학생회가 따로 존재하기는 했으나 학과제 전환 발표 이후 이를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개강파티 등의 행사를 함께 하며 연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편 컴퓨터정보공학부 같은 경우 반·과학생회가 모두 따로 운영되고 있지만 신입생들의 희망전공을 고려해 반을 배정함으로써 원활한 과반연계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전자공학부나 기계공학부와 같이 인원수가 많은 학과의 경우 반단위로 자치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과반 간의 연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전기전자공학부의 경우 전기전자공학과 학우회(아래 학우회)라는 과를 대표하는 단체가 존재한다. 전기전자공학과 행사인 'EE Festival'을 비롯해 MT 등을 학우회에서 추진·기획하는데, 지난 2009년 행사 준비 과정에서 6·9·10반 학생회와의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시 됐다. 이에 학우회 측에서는 향후 반과의 원활한 연계를 위해 ‘올해부터는 6·9·10반 회장단과도 'EE Festival'에 관한 협의를 함께 하겠다’는 의견을 표했다.
공과대 학생회장 김창민(신소재·08)씨는 “현재 연계가 잘 이뤄지고 있는 과·반도 있고 아직 따로 활동하는 곳도 있다”며 “과도기에 놓여있는 상태지만 연계를 위한 논의는 계속할 계획”이라 밝혔다.



학과제 개편으로 반이 증발해버렸다? 갈 곳 잃은 이과대 전공진입생


이과대는 2009학년도 2학기부터 과학생회 차원에서 신입생을 받고 자치공동체를 꾸릴 것을 논의했다. 이과대의 경우 타 단과대와 달리 학과제 전환에 관한 논의가 늦게 시작된 탓에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못했고, 미처 반을 정리하지 못하고 급하게 과체제로 넘어간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자치공간을 두고 생명대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관련기사 연세춘추 1645호). 이과대 측은 본래 존재했던 반방 4개를 과방으로 지정하고, 각 반에게 한 학기동안 정리할 시간을 줬다.

▲ 과학관 1층에 위치한 이과대 자치공간

이과대의 학과제 전환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된 점은 반활동에 활발했던 08, 09학번의 소속문제다. 반이 특정 과와 연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입생의 유입이 없었고, 이 과정에서 반은 실질적으로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잃게 돼 반 구성원들이 자치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소속 학과공동체에 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과대 천기4반 집행부였던 송아롬(물리·09)씨는 “아는 10학번 후배가 거의 없다”며 09학번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반활동을 했던 09학번들이 과 또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후배를 만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송씨는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과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한다”며 “반을 유지해야한다는 고집은 없고, 단지 우리 학번의 반 활동 보장에 대해서만 요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과대의 경우 3학기생이 많은 편인데, 이들은 지난 학기까지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3학기생들이 과공동체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이상 반으로는 아카라카 티켓도, 연고전 티켓도 배부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갈 데 없는 09학번들이 소규모로 ‘마지막 반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과대 학생회장 백현(화학·08)씨는 “반 활동을 하던 09학번들이 과활동을 처음 시작해 서로 모르는 상태라 과 공동체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며 현 상태를 진단했다. 백씨는 “과에 대한 소속감을 가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과학생회를 이끌어 나가는 등 학생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생명대, “교수님은 학과제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지금도 편해요!”


지난 2008년, 이과대 소속이었던 생물·생화학과와 공과대 소속이었던 생명공학과가 분리돼 ‘생명시스템대학(아래 생명대)’이라는 하나의 단과대를 이루게 됐다.
생명대의 경우 희망전공에 따라 신입생을 해당 반에 배정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학과제 전환이 예고된 이후 생명대는 과·반을 연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연계 논의 과정에서 발생한 진통은 1반과 2반에 생물·생화학과 희망생을 혼합 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는 생물학과와 생화학과 신입생들이 수강하는 기초과목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본래 생명대를 독립시킨 목적 자체가 유사 학과 간 연계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였기에 과체제 개편이 마냥 긍정적으로 검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명대 교수진은 과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공동체가 과단위로 이뤄지면 학과 행사도 강화할 수 있고 학생-교수, 학생-동문 간 네트워크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실제로 생명공학과의 경우 자치행사에 교수진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생명공학과를 제외하고는 반학생회와 과학생회가 따로 존재하고, 과학생회가 기획하는 행사도 전무하고 실질적 업무를 맡고 있지도 않아 당장 반의 역량을 과에 이임하는 것이 어렵다. 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과·반 인원 간의 교류가 절실하다. 생명대 학생회는 이러한 교류를 위해 3개 반이 함께 하는 연합MT와 수시생 모임을 추진했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생명대 체육대회 역시 교수진의 요구에 따라 과체제로 진행한다. 기존의 반 인원이 나눠져 학생들은 학과단위로 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생명대 학생회장 박해승(생명공학·09)씨는 “생명대는 학과 간 차이도 적고 반 숫자와 과 숫자가 동일해 비교적 유연하게 체제 전환을 할 수 있는 편”이라며 “반발이 없다면 과체제로 차차 전환할 것이고, 올해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 연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과대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과문화 정착의 첫걸음 내딛기


생과대는 반체제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운영됐다. 신입생들은 학과와 상관없이 임의로 반에 배정됐으나 분반들은 여러 가지 여건 상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했다. 반학생회는 생과대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반방도 따로 마련되지 못했다. 2009학년도 생과대 학생회에서 삼성관 내 방치된 공간을 찾아 반방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학생회실과 과방과의 거리가 멀어 비효율적이라 판단돼 무산됐다. 이 상태에서 학과제로 전환됐고 생과대는 2010년부터 다시 학과단위로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기능 정지 상태에 가까웠던 과학생회가 자치활동과 관련한 업무를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OT나 새터, 총MT, 축제와 같은 행사들은 단과대 학생회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이는 생과대 전체 인원이 학번 당 150명 정도로 적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더불어 과학생회에서도 개강·종강파티나 사물함 배분, 각종 정보 전달 등 작은 업무에서부터 자치공동체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편, 생과대의 경우 성비가 낮아 조직적인 활동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여학생보다는 남학생이 조직공동체를 꾸리는 데 적극적이다보니 절대적으로 남학생의 수가 부족한 생과대의 경우 자치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게다가 실습이 많은 생과대의 특성상 후배를 챙긴다거나 할 여유가 없기도 하다. 생과대 학생회장 조동완(식품영양·08)씨는 “아무래도 10학번들은 이전 학번에 비해 과에대한 소속감과 애착이 강해 보인다”며 “10학번들이 과공동체를 탄탄하게 세울 수 있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군대갔다왔더니 반이 사라졌어요!”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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