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월의 흐름에 따른 세상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총여학생회도 그러한 변화로부터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지난 수천년 동안 억압받던 여성의 지위는 최근에 많은 향상을 가져왔다.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 선거권을 얻었던 것은 지난 1893년 뉴질랜드에서가 처음이었고, 미국만 해도 1920년, 영국은 1928년에서야 인정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여성선거권이 인정됐다.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 향상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우리대학교에서 국내대학 최초로 총여학생회(아래 총여)가 출범하던 지난 1988년 만해도 우리사회에서 여성주의는 아직 생경한 개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대학교는 국내대학으로는 최초로 그동안 소외됐던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러한 노력으로 여학생의 지위는 많이 신장됐다.

오히려 이제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지위가 역전이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핵가족시대에 따라 남아선호사상은 많이 사라졌고, 여학생이 신입생 과반수를 넘는 학과도 많이 생겼다. 이제는 남녀구분이 사라지고 남녀학생비율이 역전되어 오히려 남학생이 소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대학교의 총학생회장도 여학생이다. 

최근 총여의 정체성과 이념은 많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여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는 현재의 상황에 있어서 총학생회는 여학생과 남학생 구분없이 모두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이제 총여는 그 정체성을 상실한 듯하다. 이제 총여학생회가 부르짖는 문제들은 여성주의의 담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현재 총여가 추진하는 사업은 지나지게 이념적이다. 총여가 추진하는 탈이성애중심주의나 성적소수자문제 등이 왜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문제가 제기돼야 하는지 그 본질에 대한 혼란을 가져온다. 이성애는 만물존재의 근원을 이루어 왔을 뿐더러 성적소수자는 여학생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총여가 그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념적 논쟁과 총여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총여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소외되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것이라면 이들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이념논쟁이 오히려 총여를 고립시키고 있다. 그들만의 목소리만 내보낸다면 총여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총여만의 정체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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