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촉발된 미국과 중국의 기축통화 전쟁

 

지난 8월 2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는 찬성 348표, 반대 79표의 압도적 표차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환율 조작이 의심되는 국가들의 수입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법안으로, 아직 환율을 시장 기능에 맡기지 않은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야오젠 상무부 대변인은 9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환율을 이유로 관세 부과 여부를 정하는 것은 WTO 규정에 위배된다”며 위 법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환율 전쟁’이라고 불리며 올해 초 수면 위로 떠오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최근 이렇게 심화됐다.

지난 2008년 9월 14일,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은 금융위기의 수렁에 빠졌다. 그동안 부실한 기반 위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금융투자에만 열을 올리던 미국이 급격한 금리 변동으로 인해 금융위기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의 금융시장과 관련이 깊었던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달러화의 신용을 추락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던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자 전세계의 금융시장에 혼란이 초래됐고, 새로운 기축통화의 등장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기축통화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선 먼저 국제통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국제통화는 다른 나라의 통화로 쉽게 바꿀 수 있는 통화를 가리키며, 국제통화가 되기 위해선 통화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 경제규모가 상당히 크고 국가신용도가 높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같은 선진국의 통화들은 모두 국제통화라 할 수 있다. 기축통화는 이런 국제통화들 중에서도 기준이 되는 통화를 말한다. 기축통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기축통화를 사용하게 되면 거래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기축통화는 무역거래뿐만 아니라 자본거래에서 많이 사용된다. 또한 모든 통화는 기축통화에 기초해서 환율이 정해지기 때문에 기축통화를 갖고 있으면 보유한 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미국의 달러화는 전세계의 무역량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금융거래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기축통화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으며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미국 달러화 중심의 기축통화 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기축통화 전쟁의 서막』의 저자 장팅빈씨는 “실물 기반이 취약한 미국 경제는 자연히 무너질 것이며, 달러 위기로 촉발된 기존의 세계금융질서의 붕괴와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달러화 중심의 기축통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지난 1999년에 출범한 유로화였다. 그러나 김정식 교수(상경대·국제금융론)는 “요즘은 자본 거래량이 많아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블록 안에 금융의 중심지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유로 블록에는 금융 중심지가 없기 때문에 유로화가 기축통화가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 결과, 최근 들어서는 위안화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중국에 공장을 많이 건설하면서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역량이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상하이는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 중 하나여서 기축통화가 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2009년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달러화의 기축통화 체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위안화의 기축통화 개혁 논의에 불을 붙였다. 비록 선진국들의 반대로 중국의 시도는 무산됐지만, 이를 계기로 위안화에 대한 전세계 금융 전문가들의 관심은 급속히 높아졌다.

위안화가 달러화의 위상을 넘보고 있는 지금, 현재의 기축통화 보유국인 미국이 이를 좌시하고만 있지는 않다. 미국은 위 법안 통과와 같이 중국의 움직임을 막고자 위안화를 평가 절상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러나 만약 어느 나라의 통화가치가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가 낮아져 그 국가로 수출할 때 수출대금이 자국통화로 교환되는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외무역의존도가 30%나 되는 중국의 위안화가 평가 절상된다면 중국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이에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8일 “위안화의 가치가 급등하면 중국의 기업들이 대량 도산해 세계경제에 큰 재난이 올 것”이라 말하며 평가 절상을 할 뜻이 없음을 강하게 피력했다.

우리나라도 보이지 않는 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1997년과 2008년 두 번의 외환위기에서 우리나라는 막대한 자본이 유출되면서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중국 무역의존도가 25%가 넘는 상황에서 중국의 위안화가 평가 절상된다면 우리나라의 무역에도 영향을 끼쳐 또 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국제 통화에 관한 연구와 관심이 부족해 현 사안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기축통화 전쟁에서 중국이 이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김 교수는 “중국의 위안화는 환율이 당국에 의해 관리되기 때문에 국제통화로 인정받지 못하는데다가 금융시장에서도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정확히 예측한 민간 전략가 소에지마 다카히코씨가 저서 『달러가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 정부가 각국의 통화를 비축하는 등 미국 정부 스스로도 달러의 안정성을자신하지 못하게 된 듯하다”고 말하듯 분명 달러화가 단독으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데 한계를 보일 날이 도래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과 함께 'G2'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차지할지 모를 일이다.

임우석 기자 highbiz@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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