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차 좀 앞쪽으로 빼주세요.” 기자가 열심히 흔드는 빨간 지시봉이 무색하게 택시 운전사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호대기선이 있는 앞쪽으로 나오지 않고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택시 때문에 백양로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기자가 쩔쩔 매고 있자 같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비원 ㄱ씨가 달려왔다.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한 끝에 택시 운전자는 화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차를 앞으로 옮겼다. “거봐 학생, 내가 쉽지 않다고 했지? 들은 척도 안한다니까.” 짜증이 날법한 상황인데도 경비원 ㄱ씨는 마치 농담처럼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닌 듯하다.


경비아저씨는 참 바쁘다 바뻐

새벽 5시 30분,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시각 B조 경비원들은 전날 24시간 동안 근무한 A조와 교대하기 위해 초소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어 조용하기만 한 학교에 아직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날은 마침 여성제가 끝난 다음날이라 학교 곳곳에 철거해야할 현수막이 잔뜩 걸려있었다. 날짜가 지난 현수막을 하나하나 확인해서 수거를 한 다음 초소 뒤쪽에 옮겨 놓으니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였다.
작업이 끝나자 학교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며 본격적인 통학 시간이 시작됐다. 일교시 수업에 늦을까봐 바삐 종종걸음 치는 학생들만큼이나 경비원들도 교통정리로 바쁜 아침을 보낸다. 교통정리는 △아침 8시부터 9시 30분 △오후 12시부터 1시 30분 △저녁 5시부터 혼잡이 해소될 때까지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외에도 실제 교통정리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교문이 좁아 쉽게 차량혼잡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폭탄을 들고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경비원 ㄱ씨의 말처럼 정문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위험했다. 경비원이 서 있을 곳이 따로 없어 오토바이들이 팔을 툭툭치고 지나갔고 차들은 비키라며 경적을 울려댔다. 아침시간에 왜 이렇게 많은 차량이 몰리냐는 질문에 경비원 ㄱ씨는 “이게 다 차량통제를 허술하게 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밀리는 도로 대신 많은 차량이 주차비 3천원을 내고 북문에서 학교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업체 측에서는 주차비를 받는 것이 이득이 돼 차량통제가 느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아침 9시 30분이 되자 정문 앞은 꽤 한산해졌다. 그제야 경비원들은 초소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는다. 식사는 초소에서 손수 만든다. 바쁜 업무 탓에 하루 두 끼밖에 먹을 수 없지만 그마저도 차가 많은 날은 제 때 챙겨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틈틈이 교통정리를 하거나 각종 잡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카페

저녁 9시 정각, 기자가 경비원 2명과 함께 야간순찰을 위해 정문 초소를 나섰다. 야간 순찰은 2인 1조로 2시간 30분마다 돌아가며 이뤄진다. 따라서 새벽 4시 30분까지 총 3회 순찰 한다. 가을밤의 공기는 쌀쌀했고 학교는 깜깜했지만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함께 순찰을 하던 경비원은 “학교가 24시간 개방되다 보니 밤에는 학생들보다 외부인들이 많이 들어와. 그래서 우리대학교는 낮에는 학교, 밤에는 카페라는 말이 있어”라고 말했다. 가까운 이화여대의 경우 자정 12시부터 정문 통행이 전면 제한되지만 우리대학교는 밤이 되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든다. 특히 취객이나 연인들, 배달 오토바이가 몰리곤 한다. 밤새 학교를 도는 일이 힘들다고 해서 빨리 걸을 수는 없다. 시간에 맞춰 정해진 코스마다 설치된 기계에 카드를 인식해 순찰을 정상적으로 했음을 확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술이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자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렌턴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살폈다. “요즘 같은 날씨엔 야간순찰도 할 만하지.” 곧 겨울이 올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는 듯 경비원 ㄱ씨가 말했다. 여름 역시 야간순찰 후 온몸이 땀으로 젖어도 마땅히 샤워할 곳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길고 긴 2시간 30분이 지나고 저녁 11시 30분, 드디어 정문에 돌아온 기자는 녹초가 됐다.

상경대 초소의 경우 비가 오면 물이 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처럼 학교를 지키며 고된 하루를 보내는 경비원들이지만 그들이 24시간 머무는 초소의 시설은 열악하기만 하다. 최근 보수가 이뤄져 좋은 시설을 갖춘 이화여대나 고려대의 초소와 달리 우리대학교 초소는 교내 시설 중 가장 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고장 난 화장실 변기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교 측에 수리를 요청해도 묵묵부답이다. 가장 열악한 상경대 초소의 경우, 겨우 한명이 누울까 말까한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가 시설의 전부다. 지렁이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합판은 썩어서 벌레가 꼬이고 수도시설은커녕 냉난방 시설조차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경비원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구(舊)동문 초소의 경우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래 전부터 변기가 고장나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다른 건물까지 가야하고, 싱크대가 없어 화장실에 있는 세면대에서 설거지까지 해결해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비가 새는 것만 고쳐줬으면 좋겠다는 경비원 ㄴ씨는 체념한 듯 보였다. 2년 전부터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식수 지원마저 끊겼다. “기껏해야 한 초소당 한 달에 2만원이면 해결될 텐데” 물조차 마음껏 마실 수 없게 된 경비원들이 아쉬워했다.
“학교에서 경비원들은 사람취급을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합동근무가 있는 날은 며칠 밤을 새워 가면서 학교를 지키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적은 보수다. 경비원들이 한 달 동안 격무에 시달리며 버는 돈은 채 120만원에 못 미친다. 생계유지만 하기에도 벅찬 액수다. 가끔은 우리가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에 의한 것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사진 박동규 이다은 기자 winner@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