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사랑하는 진, 너 정말 여기 있었구나, 이 노래는 마지막이 아니야, 이것은 마지막 노래의 전 노래란다. 그뿐이란다.”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서 진의 엄마, 셀마가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의 순간에 부른 노래다.

영화 속 셀마는 나이가 들면서 눈이 머는 병을 앓고 있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아들 진만큼은 자신처럼 눈이 멀지 않게 하기 위해 ‘꿈의 나라’ 미국에서 불법체류를 하게 된다. 고된 공장 일을 해가며 수술비를 버는 셀마는 하루하루 나빠지는 눈으로 고생하는데, 그것을 이용해 셀마가 세들어 사는 집주인은 그녀의 돈을 훔치고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운다. 하지만 셀마는 아들의 수술비를 써버리지 않기 위해 항소를 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한다.

이러한 줄거리는 사실 뻔한 멜로영화의 스토리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깐느 영화제에서 가장 영예로운 ‘황금종려상’를 받았고, 영화에서 셀마 역을 맡았던 배우이자 가수인 비욕의 손에는 여우주연상이 쥐어졌다. 그것은 영화 곳곳에서 셀마의 꿈이 생생하게, 또 비참하게 재현됐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참한 셀마의 삶을 여지없이 보여주기 위해 기존에 있던 헐리우드의 관행들을 무시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 미국이 만든 뮤지컬의 정형화된 형식과 감정선이다. 뮤지컬을 사랑하는 셀마는 그녀가 짊어져야할 버거운 현실을 잊고 자신의 꿈 속에서 뮤지컬을 부르는데 이 색채가 미국의 명랑한 그것과 많이 다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씨네21」에서 “미국 뮤지컬의 대부 버스비 버클리가 보여준, 개인의 개성을 절제하고 추구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서 철저하게 파괴됐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이소연 기자 또한 “보통의 뮤지컬영화는 감정이 고조될 때 주로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는 공동체의 일체감을 확인시키거나 고양시키는 기능을 한다”며 “그런데 이 영화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공상에 빠질 때 뮤지컬이 등장하며, 현실의 비참함을 부각시킬 뿐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국의 속을 긁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온 셀마는 자신이 마주한 가혹한 미국 현실에 실망하며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노래하고 춤춘다. 이 기자는 “셀마의 꿈과 정신분열은 뮤지컬과 미국으로 상징되는, 환상과 꿈을 생산하지만 실제로는 잔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언제나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하면 꿈과 희망이 넘쳐난다고 광고하는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들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은 어둠 속에서 펼쳐진 셀마의 노래와 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새까만 허구였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모습을 대담하게 ‘어둠’이라고 표현한 『어둠 속의 댄서』는 지난 2001년 「타임」지 선정 최악의 영화에 뽑혔다.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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