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의 숨겨진 면을 찾다.


지난 7월 6일, 방송인 김미화 씨는 트위터에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나는 출현이 안된다고 하더라, KBS 관련자가 계시다면 이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글을 올렸다. 이 블랙리스트 발언은 일파만파로 커졌고 급기야 KBS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김미화 씨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처럼, 집단 안의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는 우리 사회 안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은영(정외·10)씨는 “사람들이 KBS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블랙리스트는 어떤 사회에든 존재한다. 일례로 냉전 시기 미국에서는 소위 ‘헐리우드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10명의 헐리우드 종사자들을 철저하게 사회 안에서 배격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시 블랙리스트 안에 있었던 극본작가 존 하워드 로손을 심문한 기록을 보면, 진상 조사 위원회는 집요하게 로손에게 공산당 당원이었음을 인정하라고 거듭 말한다.
동양도 이러한 블랙리스트에서 예외는 아니다. 중국 북송 시기 사마광을 대표로 하는 구법당과 왕안석을 대표로 하는 신법당 사이에서 당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패한 구법당원들은 원우당적비에 모두 이름이 새겨져 사회에서 매장 당했다.

여기에서 블랙리스트의 사전적 정의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블랙리스트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을 기재한 명단’이다. 위의 사례를 이 정의에 대입해보면 자본주의에 반기를 드는 헐리우드 종사자는 위험인물이고, 당쟁에서 패한 구법당 또한 위험집단이 된다. 그렇다면 위험인물이라는 것의 정의는 무엇이고, 그 위험인물을 지목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창원대 사회학과 박종흡 교수는 “사실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기득권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변모될 수도 있다”며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상에 대해서 어떤 이가 반박했다면, 이는 기득권을 위협하는 자고, 그들의 눈에서 보면 위험인물인 것”이라며 “여기에서 블랙리스트는 기득권 유지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사전에 차단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블랙리스트는 존재했다. 특히 군부정권 시절에는 사회 각계에 대해 이와 같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 예를 들어 군부정권은 지난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민중미술가들을 투옥하고 작품을 압류하는 등 미술계를 단속하는데 소위 ‘미술인 블랙리스트’를 사용했다. 이 ‘미술인 블랙리스트’는 전 국립 현대 미술관장 이경성씨와 전문위원 오광수씨가 작성했는데, 이들은 과거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가 이루어지던 지난 1996년에 「한겨레」로부터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또 『전노협 청산과 한국 노동 운동』을 지은 김창우씨는 “지난 1984년 대구를 중심으로 택시 운전사들은 사납금 인하를 두고 운동을 벌였는데,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군부정권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대량해고, 노조설립 봉쇄 등을 행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집단의 권력이 불안정할수록 그 권력의 주체는 블랙리스트와 같은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며 “우리나라 군부정권 또한 권력에 대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욱 강압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블랙리스트가 꼭 이러한 정치논리에 따라 권력자가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집단 내에서 어떤 인물의 위험성을 판단하는데 사용되는 기준이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면, 바로 이 기준이 되는 블랙리스트가 집단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는 볼 수 없다. 박 교수는 “블랙리스트는 집단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집단을 영속시키고 싶은 인간 심리의 반영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안한 인간에 의해 작성되는 블랙리스트, 그리고 이로 인해 불안해져야 하는, ‘검은 꼬리표’가 달린 또 다른 인간은 누굴까.   

 

 

 

임서연 기자 guiyoomi@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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