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전이 취소됐다. 연고전을 처음 맞을 새내기에서부터 몇해 째 개·폐막식을 지켜본 정든내기까지, 연고전을 손꼽아 기다려온 학생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은 수업을 빠질 각오까지 했던 마음을 추스르며 안타까워했고 몇몇은 ‘그날’의 열정을 함께할 파란 티셔츠를 쓸어내리며 분노에 전율했다.

하지만 안심해도 될 듯하다. 이번 연고전은 오는 10일(금)에 예정대로 치러질 테니까 말이다. 다만 당신이 방금 전 느꼈을 그 감정을, 수십 년 전의 선배들은 직접 살갗으로 느꼈다. 바로 뼈아팠던 현실로 인한 연고전 ‘유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은 정기전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지난 1965년 이래로, 연고전은 총 여섯 번의 유산을 겪었다. 1971년과 1972년의 잇단 학원비상사태와 유신체제 등의 정치·사회적 이유로 연고전이 열리지 못했다. 1975년에는 이례적으로 양교의 총장들이 연고전을 중지할 것을 합의하기도 했다. 축제의 열기가 지나치게 과열돼 불필요하고 불행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보도했던 「연세춘추」는 사설을 통해 “우리가 진정 연고전의 성공적인 계승과 발전을 이루려면 한 번쯤은 연고전과 관련된 문제들을 분석적으로 진단해보고, 그것들에 대한 처방을 우리 스스로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전했다.

이후 연고전은 1980년의 학원사태를 겪은 뒤로 안정 궤도에 오른 듯 보였으나, 또다시 경기가 열리지 못했다. 똑같은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면서 학교 당국은 ‘당분간 연고전을 중지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양교 총장들은 공동성명문에서 “체육의 본질인 아마추어정신의 퇴색, 과열된 스카웃의 부작용, 양교가 기울이는 과다한 정력, 그리고 교육상의 문제점 등 연고전 개최에 수반돼 온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안해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이번 정기전을 개최하지 않기로 한다”고 발표했다.

연고전이 일제의 탄압 하에서 민족혼을 일깨우고 젊음을 발산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는 사실을 많은 연세인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고전 유산의 절반 정도가 참여 당사자들의 과열된 경쟁의식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가? 숱한 변화과정을 거치며 하나의 ‘유산’으로 이어오고 있는 연고전이 앞으로 잠재된 ‘유산’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경기에 참여하는 양교 학생들의 성숙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정석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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