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총여학생회(아래 총여)는 국내 대학가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국내 최초로 발족된 대학 내 여학생 기구이고, 여성주의 담론을 반영한 학내 제도변화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총여는 지난 1987년 11월 발족한 건설준비위원회와 총학생회(아래 총학) 여학생부를 중심으로 기구 설립의 출발점에 섰다. 총학 여학생부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소외된 여학생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결과 1988년 3월, 70%의 투표율과 90% 이상의 지지율을 등에 업은 초대 총여가 출범했다. 당시 총여학생회장 이은희 동문(철학·85)는 새로 출범한 총여의 목표에 대해 “여성불평등 사회구조의 타파와 평등한 여세공동체를 이룩해 해방연세 민주연세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역대 선본을 차례로 거쳐가며 여성주의 담론은 학내의 기존 구조와 갈등하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대표적 예로 △새내기새로배움터 반성폭력 내규 및 학칙 제정(2000년) △생리결석계 공식 제도화(2007년)을 들 수 있다. 이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연세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대학교 내·외부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총여는 최근 몇 년간 그 위상과 역할이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총여학생회비 및 선거권논란’과 ‘총여 대체기구 검토 논란’이 그 대표적 사례다. 논란의 핵심은 등록금의 일부로 납부하는 학생회비의 5~6%가 남학생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치 않는 총여에 남학생의 동의 없이 배정된다는 점이었다. 지난 2005년 시작된 논란은 2007년 총학생회장의 ‘총여 대체기구 검토 중’ 발언에 의해 ‘총여폐지론’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몇 년째 이어지는 단선 출마에 대한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6년간 출마한 총여는 모두 단일 선본이었다. 모든 선본들이 나름의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간의 ‘경쟁의 부족’이 총여의 고립과 정체를 심화시키지 않았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총여의 활동이 설립목적과 역할에 부합된다고 생각하느냐’란 「연세춘추」설문조사에 무려 42%의 응답자가 부정적 의견을 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여성주의 담론이 경쟁적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여성만의 목소리가 충분히 수렴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단과대나 과 학생회 차원의 소규모 여학생 모임 역시 ‘고사상태’에 빠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때문에 그간 총여가 걸어온 길을 학생들과 함께 재검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총여가 존재하는 현실은 7천 여학생과 2만 연세인도 함께 숨쉬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총여 스스로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연세춘추 공동취재단
박혜원, 송명근, 이가영, 정석엽  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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