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

올해로 네 번째 농활을 맞이하는 내게 늘 농활은 풀지 못하는 숙제같은 것이다. 매년 농활을 찾게 되면서도 농활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새내기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배들이 가자기에, 친구들이 가기에 따라갔었다. 처음 간 농활에서 ‘농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아무런 말도 못했었다. 연대가 무엇인지, 농업은 무엇인지, 농민은 무엇인지, 학생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등 늘 마음 속, 짐만 잔뜩 싣고 돌아왔었다. 농활 기간에는 하지 말라는 것도 많다. 햄, 소시지 안 먹기, 육류 자제하기부터 시작해서 피곤해도 낮 시간에는 누울 수 없고, 핸드폰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미리 목표와 규율, 일정을 정해 떠나간 농활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하지 않아야 될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농활을 매번 가는 이유는 그 ‘공동체 생활’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가길 원한다. “너무 길어요.”, “벌레가 많아요.”, “저희 집도 농사지어요.” “그냥 쫌...” 농활을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들에게 돌아왔던 답변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선배인데, 더 조르면 혹시나 불편한 사이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 씁쓸한 표정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이번 여름, 이렇게저렇게하여 새내기 다섯, 정든내기 일곱이 7박 8일의 여름농활을 시작했다. 우리 농활대의 목표는 ‘서로배움’이었다. 서로에게 배우고, 또 내 스스로 배울 점을 보이는 것이 농활의 목표였다. 그래서 교양시간 시작 전에는 손을 맞잡으며 ‘서로배움’이라고 외치는, 그런 낯간지러움도 감수했다.

  과방에 마주 앉기도 어려운 친구들과 한 공간에 둘러앉아 쌀값 이야기, 등록금 이야기, 퀴어 이야기, 페미니즘 이야기할 수 있던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우리는 이번에 학번과 나이, 성별에 구분없이 기존에 ‘언니, 오빠, 형, 누나’라는 호칭 대신에 이름 혹은 별칭을 부르기로 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호칭 자체가 학번권력, 나이권력, 성별권력에 얼룩져있다는 것을 성찰하고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맺음에 다가가고자 했던 노력의 일환이다. 많게는 다섯 학번까지 차이나는 우리 농활대였기에 처음에는 어색하고 손발이 오글거려 소름이 끼칠 정도였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호칭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솔직한 자기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고, 평가 시간에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젖은 눈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졌었다. 이렇게 농활은 자치공동체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이고 그러한 시도들이 일상에서 빛을 발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게하는 시발점이다.

  이와 더불어 농활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곳에는 ‘농민’이 있고 ‘정’이 있기 때문이다. 농활은 많은 학생들이 알다시피 ‘농촌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학생연대활동’이다. 봉사가 아니라 연대인 이유는 우리가 농민을 ‘도우러’가는 것이 아니라 농민에게 ‘배우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삶을 실로 대단하다. 일찍 일어나 밭을 일구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이런 일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농사에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거르면 1년 농사가 다 망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민과의 교감이 있을 때, 농활은 그 빛을 발한다. 드높게 펼쳐진 계룡산을 뒤로하고 이뤄진 상도 1리에는 감자밭, 도라지밭, 고사리밭, 딸기 하우스가 있고, 늘 정성스레 주시는 새참, 부실한 컨버스로는 일 절대 못한다고 당신이 신던 고무신 벗어주신 할머니가 계시며, 달다며 나뭇가지 한움큼 꺾어주신 보리쮸, 우리 준다고 예쁘게 개어놓은 깻잎, 나만 보면 기겁하고 달려오던 똥꼬, 며느리 삼겠다고 하시던 할머니, 무한 에너지를 자랑하시는 이장님이 계신다. 지금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먹먹해질 정도로 그리운 상도 1리.

  여기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상도 1리의 풍경과 정을 그리워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에도 관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이유로, ‘농촌’이라는 이유로 그리워하는 것은 도시인들의 싸구려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생의 쓸데없는 오만과 얼치기 정의감이 아니라 농민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 들을 것과 나눌 것은 어떤 것인지 가슴 깊이 느껴야 한다.

  평생 이렇게 살거라 다짐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 앉아 노래 부르고 몸도 움직이고 땀도 흘리자고. 서로 무릎에 무릎을 베고, 등에 등을 대고 저기서 우는 강아지는 누구네 강아지인지, 어제 누구네 집 닭은 밤만 되면 운다는 이야기 하더라고. 주말이면 다같이 모여 김치전 부쳐 먹자고. 그래서 농활은 내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만남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임경지(행정·08)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