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비망록]

때때로, 보이는 것은 우리를 기만한다. 들리는 것은 더욱 신뢰할 수 없으며 지각할 수 없는 육감은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감각기관을 통해 감지되고 처리되는 수많은 정보들이 사실상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인식론적 접근이 아니다. 

학내 전반적 사안을 다루는 취재1부 기자인 나는 대부분 현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순간순간 에너지의 흐름이 급변하는 그곳에서 나는 부실한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정보와 현장분위기를 입력한다. 때문에 원래의 나보다 ‘조금 더’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발 늦게 현장에 도착한 순간, 정보의 생생함과 신뢰성은 추락하고 기사의 품격은 떨어진다. 보는 것을 포기한 취재는 전화와 이메일로 대체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최악의 경우 식스센스가 동원된 추측성 기사가 지면에 나갈 수도 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의 확실함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임’은 곧 힘이자 권력이다.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굳이 하나의 중심을 꼽으라면 그것은 마땅히 ‘부지런함’이 돼야 한다. 연세사회의 여론을 수합하고 중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미 부패해버리기 시작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이’ 구해내야 하니까.

그렇다면 이제껏 나는 과연 어땠을까. 전화기와 컴퓨터에 의존해 불성실한 취재와 ‘오보 아닌 오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지는 않았을까.  현장으로 뛰어가는 발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라났을 나태함을 방관하지는 않았을까.

연세춘추의 진면목을 알아가는 부기자 생활을 갈무리하고, 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진 이 대목에서 나는 나의 ‘게으름’을 자탄한다. 발로 뛰는 기자가 아닌 머리와 손가락으로 기사를 뽑아내려 했던 안일함을 뒤돌아본다. 그리고 조직의 가운데 즈음에서 매너리즘을 만끽했을 앞으로의 나에게 제동을 걸어본다.
지금의 반성과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비망록을 남긴다.

정석엽 기자 adio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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