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연희문학창작촌

당신의 일상은 건물과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건물들은 당신을 휘감고 거리의 차들은 경적을 울려 괴롭힌다.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에 치이고 일상에 치여 지쳐버렸을 당신에게 권한다. 서울에서 ‘신선놀음’ 한번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연희문학창작촌은 소나무로 가득했다. 바닥에 깔린 돌길은 고즈넉했다.
 

걸음마저 느려지는 도심 속 적막

 지난 8월 26일, 연희문학창작촌은 소나무로 가득했다. 바닥에 깔린 돌길이 고즈넉했고 그 길을 따라 걷던 중 발견한 정자는 말없이 자기 위에 앉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도시를 가득 메웠던 소음마저 한적한 분위기에 취해 입을 다문 것 같았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문학인들의 자유로운 집필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17명의 국내작가와 3명의 외국작가가 3개월 동안 머물며 문학창작 활동을 지원받고 있다. 더불어 이곳은 시민들과 문인들이 소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번잡한 생활에 지친 도시 사람들은 이곳 작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어볼 수 있고,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열리는 ‘연희목요낭독극장’에서 직접 작가와 눈을 맞출 수 있다.

“꺄르르” 웃음소리가 서울 도심 속 작은 숲의 고요함을 흩트렸다. 문학인의 집필을 위한 공간 중 ‘울림’이라 불리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신선을 만난 느낌이었다. 홀린 듯이 다가가서 곁에 앉았다. 서영은 소설가를 비롯한 시인과 화가 등 예술인 네 명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연희문학창작촌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와서 그간 살던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서울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던 김상미 시인은 문인들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매료된 듯했다. 신중선 소설가는 “이 곳에는 방해요소가 없기 때문에 집중을 하기 더 쉬울 것 같다”고 했다. 이를 경청하던 서 소설가가 불쑥 “그마저도 다 허상이야”라며 운을 뗀 후 자신의 예술철학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어떤 집필 철학을 가지고 있든, 이곳은 문인들이 자유롭게 소통을 하고 웃음을 내뱉을 수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목요낭독극장이 열린다.

 시민과 작가가 함께 숨 쉬는 목요일

 마침 마지막 주 목요일. 목요낭독극장을 준비하기 위한 잔잔한 음악이 피부를 자극했다. 라틴계 음악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목요낭독극장을 참여하기 위해 ‘열림’이라는 야외무대에는 시작하기 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곳곳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친분이 있는 문인들이었다. 책을 보며 상상했던 그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는 걸 보고 있자면 도시 한 복판에서 잠시 눈을 감고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열림’에 앉아 낭독가와 연주가들의 공연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엔 여전히 빌딩의 불빛이 꺼질 줄 모르고 깜빡이고 있었다.

시민들은 이곳을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창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기자의 옆에 앉아있던 김지영(40)씨는 “조용호 작가의 책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를 읽었는데, 오늘 작가가 소설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를 직접 불러준다기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번화가 가까운 곳에 이렇게 솔내음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참 멋지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이번 목요낭독극장에는 소설 속에 등장했던 해금과 기타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게 구성됐다. 강은일 해금 연주자는 분위기에 취해 눈을 감고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객석에 다 앉지 못할 정도로 많은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가락을 경청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작가가 대학생 때 들으며 전율을 느꼈고,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됐다던 80년대의 곡이 흘러나왔다. “와, 이 노래도 들려줘?”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 가면 행복해진다. 당신도

낭독극이 끝난 후 서 소설가를 다시 만났다. “이번 낭독극에서 소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낭독뿐 아니라 노래와 선율을 곁들여 들어서 더 분위기가 달아올랐던 것 같다”고 몽환적이었던 낭독극의 분위기를 곱씹었다.

연희문학창작촌이 생길 때부터 함께했다는 안현미 실장은 “요즘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문학 자체에 대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뛴다”며 “작가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가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보곤 한다”고 미소 지었다.

“활자만으로 갇혀있는 소설 속에서 나와, 노래와 독자들과 어우러지니까 소통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 같다”는 이번 목요낭독극장의 주인공 김용호 소설가의 감상을 들으며 느낄 수 있었다. 연희문학창작촌은 그가 품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다시 번잡한 도시로 나왔다. 방금 느꼈던 해금 선율과 소나무 향기, 그리고 귀뚜라미 소리가 꿈에서 본 듯 희미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따뜻함이 남아서 그것이 꿈이 아님을 증명했다. 한바탕 신선놀음을 한 것처럼 가벼웠다. 가을학기를 시작하며, 분명히 지칠 당신에게 권한다. 가서, 느껴보자.

김정현 기자 iruntoyou@yonsei.ac.kr

 사진 박동규 기자 ddonggu77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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