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이른 막무가내식 강의평가 공개, 과정도 결과도 미달

    

 

지난 8월 10일 학교 홈페이지에 ‘강의평가를 공개한다’는 내용이 공지됐다. 이틀 후 학생들은 학사 포탈을 통해 강의평가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강의평가 항목을 클릭한 순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옆으로 길게 누워있는 그래프 뿐이다. 눈금이나 어떠한 표기도 제시되지 않아 그래프의 길이 외에는 정확한 수치도 알 수 없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항목들로 공개된 강의평가는 △부실한 공개 항목 △기존 강의평가 문제의 중첩 △충분치 못한 논의과정 △석연치 않은 공개 취지라는 문제가 지적돼 앞으로 보다 많은 갈등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모습 드러낸 강의평가, 반응은 ‘싸늘’


오는 8일까지 열람이 가능한 강의평가는 학사 포탈에서 지난 1년간의 정보가 학기별, 대학별, 전공별로 분류돼 검색이 편리하다. 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부실했다. 생명공학과를 제외한 모든 학과에서 공개된 평가항목은 네 개에 불과했다. “강의평가에 제시된 그래프 몇 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며 “강의 수강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시연(영문·09)씨의 말처럼 공개된 자료는 단순한 막대그래프로 나타나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 대신 혼란만을 가져다 주고 있다. 강의평가가 공개된다는 소식에 우리대학교 커뮤니티 ‘세연넷’에서도 기대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게재되는 등 많은 학생들이 이에 주목했다. 하지만 정작 강의평가가 공개되자 학생들은 ‘부족하다’, ‘충분하지 않다’ 등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와 같은 학생들의 반응에 교무처장 문성빈 교수(문과대·정보공학)는 “이번 공개는 실시한다는 데에만 의미를 뒀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짧은 시간 내에 공개를 결정한 것이기에 모두 만족을 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개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보다 빨리 전달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민감한 사안이니 만큼 신중히 항목을 추려 내다보니 공개된 항목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며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기존 강의평가도 문제는 존재해

 

염유식 교수(사과대·의료사회학)는 “우리대학교에는 다양한 학과와 강의가 있는데 이를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라며 공개되지 않은 문항의 문제도 제기했다. 기존의 강의평가에서 단과대의 특성이 반영된 다섯 개의 문항을 제외한 나머지는 학과의 특성이 전혀 고려돼 있지 않은 공통문항들로 구성돼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의 강의평가 태도를 공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적했다. 학생들은 강의평가 시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모두 일관된 점수를 주거나 대충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교수들은 지적한다. 이처럼 학생들은 강의평가를 순수한 의미에서의 평가가 아닌, 단순히 성적을 확인하기 위한 ‘관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자료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자료가 공개 된다면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커질 염려가 있다.


예민한 사안이어도 논의과정은 없다?


강의평가 공개는 이를 추진한 학교본부뿐만 아니라 강의의 수요자인 학생, 그리고 공급자인 교수 모두 입장이 달라 예민한 사안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교수평의원회(아래 교평) 부의장 양혁승 교수(경영대·인력자원및산업관리)는 “그간 교평에서는 학교본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일방적으로 추진돼 왔다고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개선점과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이번 안건을 결정했다”며 이번 강의평가를 “정당성과 원칙이 결여된 결정”이라고 평했다. 교수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문 교수는 “지난 3월부터 교평과의 만남을 5~6차례 가졌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앞으로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강의평가 문항 개선을 위한 테스크 포스 팀(Task Force Team, TFT)을 구성했다는 것을 노력의 일환으로 거론하며 “학생 개개인의 주관적인 것이 아닌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의 획일화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공개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며 이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다 많은 연구를 통해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수 사이의 의견차도 일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경원 교수(문과대·영국희곡)는 “학생을 수업의 능동적인 주체로 인식하려는 일환으로서의 강의평가 공개는 찬성하는 바”라고 말했 다. 학생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유익한 강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는 공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주관 교수(문과대·노문학)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조 교수는 “현재 공개된 강의평가는 계량화·수치화 된 자료가 전부인데 이것이 큰 의미를 지닐지 의문이 든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외에도 염 교수는 학생과 교수간의 의견차를 들어 소통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학생과 교수가 정의하는 ‘좋은 강의’의 의미가 모호하다”며 염 교수는 자유로운 의견교환을 통해 서로의 관점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꺼림칙한 강의평가 공개 취지

 매년 9월에 실시되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아래 대학평가)’를 강의평가 공개의 가장 큰 이유로 겨냥한 것으로 꼽는 교수들이 많다. 양 교수 역시 “이번 결정은 대학평가의 기준을 따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언급했다. 이에 문 교수는 “강의평가를 대학평가가 진행되는 시기에 맞춰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들로부터 제기된 이번 공개가 ‘대학평가를 따라가기 위한 결정이 아니었나’라는 비난에 대해서 문 교수는 “우리대학교를 바라보는 대외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교수들은 강의평가를 공개하는 것이 본래 취지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이전까지 강의평가는 학생이 성적확인을 하기 직전 학사 포탈에서 한 학기의 강의를 평가해 이것이 해당 교수에게 전달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을 통해 교수는 지난 학기 자신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의 반응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를 수업지표로 활용, 다음 수업에 반영하는 일종의 ‘피드백’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강의평가 자료가 학생에게도 공개 되면서 본래 취지를 잃을 것이라는 의견에 교수들은 공감하고 있다. 강의의 질을 더욱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강의평가가 공개되면서 이제는 ‘보여주기 식’으로 전락해 단순히 스타강사만을 양산할 가능성도 크다는 의견이다. 즉 강의평가의 잣대에 맞춘 강의만을 준비해 ‘교육의 획일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조 교수는 강의평가의 공개가 형식에만 그쳤다는 의미로  ‘구호를 위한 구호’라고 표현해 성급한 공개를 우려했다.

강의평가 공개를 두고 학교본부와 학생, 그리고 교수 측은 앞으로도 대립각을 세워 나갈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을 통한 의견차를 좁히는 것이 필수다. 과연 ‘모두가 긍정할 수 있는’ 강의평가 공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는 앞으로의 노력에 달려있다.


박혜원, 정석엽 기자 adios@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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