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가장 가까워서 달동네라 부른다는 그 곳은 낭만적인 이름에 걸맞게 각종 영화 및 만화 그리고 소설 등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달동네는 만화 『위대한 캣츠비』의 주인공 캣츠비가 연인 페르수와 사랑을 나누는 곳이자,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 같은 삶을 사는 동네이자, 한 섞인 ‘으악’ 소리를 지르는 으악새 할아버지가 사는 괭이부리말이다. 그러나 낭만과는 거리가 먼 현실 속의 달동네는 그와 함께한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5월의 벚꽃 잎처럼 하나 둘 지고 있다. 우리대학교 주변의 ‘아현동’이 그 중 하나다.
풀뿌리 라디오방송 마포FM을 운영하는 송덕호씨는 아현동 재개발단지에 사는 주민을 일주일 동안 인터뷰했던 일을 가장 값진 기억으로 꼽았다. 용역업체 측은 철거가 진행된 지역에 남은 한 가구에 가스를 끊고 거주지 밖으로 나가는 길마저 폐쇄하는 등 폭력에 가까운 물리력을 가했다. 그러자 송씨가 이런 부당성을 알리는 데 라디오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 후 폐쇄됐던 출입구는 다시 열렸다.


“지난주에 쫓겨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현동 주민의 인터뷰가 라디오 전파를 탄지 반년이 지난 2010년의 무더운 7월. 기자가 들어야 했던 말이었다.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 윤성일 위원장은 “쫓겨났다”고 표현했다. 대부분이 철거된 아현동 재개발단지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한 가구는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임대아파트에 오는 26일에 이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용역업체 측은 명도소송* 승소를 이유로 보름이라는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현동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한 주택. 골목이 쓸쓸하다.

주민이 즐거운 아현동이 되도록

아현동 재개발 과정의 문제점은 용역업체의 폭력적인 행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현동 재개발 과정에서 조합장은 뇌물혐의로 구속되고 관련 공무원은 비리 혐의로 직위해제 됐다. 또 관련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원들을 설득해, 조합원들은 본래의 예상금액보다 1억 5천만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뉴타운에 입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합원의 20%만 입주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한 상인들은 1천~1천5백만원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을 받을 수밖에 없음에도 가게 폐점을 거절할 수 없다. 재개발 중에는 상권이 무너져 장사를 계속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세입자 권리를 찾기 위한 단체소송 진행을 주도했다. 아현동 재개발단지에서는 50여 명의 주민이 이에 참여했다. 아현동 세입자들의 소송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승소한 지역도 있다. 뉴타운 조성이 결정되려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세입자들은 그 중 첫 단계인 ‘지역선정’이 되기 3개월 이전에 입주했어야만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역선정이 되더라도 해당 구청이나 시청에서 시행인가를 확정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3개월 이전에 입주하지 않은 세입자들은 매우 많다. 따라서 보조금 지급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집을 잃게 되는 세입자가 늘어나게 된다. 소송은 이런 부당성을 개선하기 위해 진행됐다.


더불어 이들은 민간 중심의 조합을 투명하게 선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또 집주인들로 구성된 조합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뉴타운 사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홍보한다.

아현동 재개발 단지의 풍경

역사와 문화가 아현동에 살아 숨 쉬길

아현동 주민들의 생계와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 이외에도 아현동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인식해 현재 모습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단체 ‘문화우리’는 2006년부터 도시경관기록보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점차 사라지는 옛 도시 경관을 이미지로 기록해 보존하는 활동이다. 문화우리 여지연 활동가는 “뉴타운 사업을 거스를 수 없다면 서울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현동의 경관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현동에서 몇몇 집들을 그대로 보존해 지역의 커뮤니티 장소로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라는 여 활동가의 말에는 아현동이 단순한 철거단지로만 인식돼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것 같았다.


수많은 철거단지 중 아현동을 기록하는 데 주력하는 문화우리의 활동은 아현동 주민들의 바람 때문이었다. 잘 정돈된 도시의 아파트 숲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현동의 순수함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북아현동의 주민들이 문화우리에 기록을 부탁했던 것이다.


찬바람이 불수록 가까이서 온기를 나누려 하는 것처럼 뉴타운 단지 조성을 위한 아현동 강제 철거가 아현동과 그 주민들의 사이를 더 끈끈하게 했다. 이는 기록자원활동가 ‘아키비스트**’들의 도시경관기록작업과 더불어 실행된 주민참여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아현동에서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직접 동네를 취재해 마을 신문을 만들기도 하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동네 지도를 제작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시하기도 한다. 또, 동네 주민들이 잡지를 만드는 일도 진행 중에 있다. “동네의 변화와 발전은 주민들이 주인공이 돼 주도해야 하고 그래야만 지역의 색깔과 문화가 생겨날 수 있다”며 자신의 동네에 대해 주민들이 좀 더 애착을 가지고 동네에 대해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게 하고 싶어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여 활동가의 바람은 이뤄지고 있었다.


아현동 기록을 시작할 때는 철거의 대상을 남긴다는 모순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처럼 주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아현동 구석구석을 남기려는 시도가 시작되자 점차 많은 이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 최초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아현동을 대상으로 기록을 진행하게 됐으며 방송사들은 재개발 지역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결국 서울시에서 각 구청에 ‘뉴타운 개발지에 옛 모습을 남기라’는 공문을 내리는 데에 이르렀다.


“현대화를 거듭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여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에요.” 여 활동가는 도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지역 정체성이 살아 숨쉬는 ‘생태·문화 도시’를 계획하는 것이 아현동을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아현동은 많은 작가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그 영혼의 숨결을 내뿜고 있다. 천 장이 넘는 아현동 사진을 바탕으로 만화 제작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주명(25)씨 역시 사라져가는 아현동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철거대상지역에 살았다는 이씨는 “달동네를 만화 배경으로 활용하면 만화 구독층인 젊은이들이 달동네에 좀 더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만화 제작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씨는 아현동을 비롯한 많은 철거지역을 만화의 무대로 삼아 이를 보존하려는 여론 형성에 일조하고 싶어 했다. “만화에 달동네가 흔히 등장하는 것은 달동네라는 장소가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라던 이씨에 따르면 달동네는 모두의 마음속 고향으로, 쉽게 철거해서는 안 될 지역이었다.


우리대학교와 거리적으로 매우 가깝지만 쉽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역. 그 관심의 정도에 관계없이 아현동은 그 자리에 그대로 숨 쉬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달동네는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장소이자 우리 이웃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아현동이라는 가까운 달동네가 우리가 상상하는 풍경 그대로 남을 수 있을지, 머리를 베면 그 자리에 두 개의 머리가 생긴다는 신화 속의 괴물 휘드라처럼 계속 생기는 아파트가 그 자리에 똬리를 틀게 될지는 우리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명도소송: 부동산의 점유자에게 부동산의 점유를 이전하여 줄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아키비스트: 기록(공문서) 보관인을 뜻하는 영단어. 여기서는 기록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김정현 기자 iruntoyou@yonsei.ac.kr
사진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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