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근태씨와 청춘을 상담하다

서점에 가서 잘 팔리는 책 한 권을 골라 표지를 슬쩍 넘겨보자. 그런 책을 쓴 저자들의 약력은 으레 ‘어디 사장, 어느 그룹 대표, 무슨 칼럼 기고’ 등 멋진 단어들로 가득하다.

비록 박지성처럼, 혹은 안철수처럼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인은 아니지만, 여기 우리와는 다른 ‘평범하지 않은 프로필’을 갖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벽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면서도 한없이 부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 한근태씨를 만나봤다.

‘평범’하면서 ‘화려’한 그의 프로필

한씨는 서울대, 미국국비유학, 대우 자동차 최연소 이사를 지냈을 만큼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다 그는 적지 않은 나이인 42살에 자유를 꿈꾸며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인생 노선을 과감히 바꿨다. “마흔이 넘어서야 시간적, 직업적, 경제적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어지더라고.” 그는 일의 본질을 잘 파악하는 자신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으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인 경영 컨설턴트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수백권의 책과 강연 테이프를 보며 부단히 공부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 현재 그는 ‘한스컨설팅’ 대표로서 기업 경영 컨설팅이나 CEO 임원 코칭을 하고 있다. “조직의 건강 상태를 진단, 처방하는 일 뿐 아니라 임원들 중에서 누가 사장감일지, 누가 조직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 존재일지를 분석하기도 해. 이런 인사 관리가 조직이 발전하는 데 정말 중요하거든.”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씨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이자 한국리더십전문센터 전문위원이라는 또 다른 타이틀로도 불린다. 또한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북리뷰’ 코너를 진행하고, 「머니투데이」에 고정 칼럼 ‘사람과 경영’, ‘성공이란…’을 연재하며, 『나를 위한 룰을 만들어라』, 『리더의 언어』, 『청춘예찬』, 『중년예찬』 등 총 13권의 자기계발서를 쓰기도 했다.

이 많은 일들 중 어떤 일에 가장 주력 하냐는 질문에 한씨는 “음……. 전부 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라는 대답으로 기자를 당황시켰다. 그는 “주식을 분산 투자하듯이, 직업에도 분산 투자가 필요한 것 같아. 직업이 다양하면 하나가 잘 안 맞거나 잘 안 돼도 위험 부담이 적잖아. 그러니까 모두 열심히 해야지”라며 소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론 다 열심히 하려다보면 힘이 들겠지. 하지만 자기 힘에 겨운 역기를 들어야 근육이 생기듯 늘 힘에 겨워해야 고수가 될 수 있어. 어떤 일이 나에게 딱 적당하다 싶으면 너무 나태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지 좀 의심해 봐야 하는 거지.”

좀 놀아, 너무 초조해 하지 마.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성실해. 좀 놀았으면 좋겠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대학 음주문화의 문제점을 꼬집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한씨는 요즘 대학생들을 측은히 여기고 있었다. 그는 “우리 때는 놀면서 대학 졸업해도 취직하기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학점 관리하고 스펙 쌓아도 힘들잖아”라며 기자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또한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지 뚜렷한 진로를 찾지 못했다며 초조해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인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야. 그 일을 너무 빨리 찾으려고 안달하지는 마.” 그는 김연아처럼 이른 시기에 자기 진로를 발견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또 그런 삶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통쾌한 한마디를 날렸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지? 그게 잘하고 있는 거야.”

젊다면 도전을 멈추지 마라!

사실 청춘은 고통스러운 시기이다.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뭔가를 거두고 싶어 한다. 풍요를 꿈꾸고, 안정된 삶을 원한다. 씨도 제대로 뿌리기 전에 추수를 하고 싶어하니, 거기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초년 고생의 의미도 몰랐다. 만일 고생 총량의 법칙을 알았더라면 훨씬 기쁜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했을 거고, 유학 시절도 보냈을 것이다. (저서 『청춘예찬』 중)

물론 그가 말한 여유가 무작정 손을 놓고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한씨는 젊은이들에게 의도적으로라도 초년 고생을 해 볼 것을 조언했다. “부자 부모를 둔 덕에 고생 안 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못 가.” 그는 젊을 때 세상에 자기를 노출시키고 몸을 던져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자기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충분히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 너무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안 돼. 젊어서 고생은 당장은 힘이 들지라도 반드시 나중에 보상받게 돼있어.” 그는 자기 자신도 그랬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을 때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젊을 때 연애 또한 지겹도록 해보라고 말했다. “사람은 연애할 때 머리를 가장 많이 쓰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어떻게 해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지, 그런 기술들을 연애에서 배우는 거지. 연애에서 실패하는 건 큰 일이 아니지만 이런 기본적인 기술 없이 결혼하면 큰 재앙이 될 수 있어.”

“인맥 관리 하지 말라는 게 인맥 관리를 잘하는 방법이야.” 그는 인맥 관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꺼냈다. “어떤 의도를 갖고 사람을 사귀면 안 돼. 인맥은 활용하지 않으려 할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가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돼있어.” 

솔직하게, 호탕하게!

인생의 롤모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반면 교사는 있어도 그런 건 딱히 없는 것 같아”라고 ‘시크’하게 대답하던 그. 그러면 인생관은 무엇인지 묻자 “글쎄, 밥은 먹고 다니자, 빚은 지지 말자, 보증은 서지 말자 정도랄까?”라며 껄껄 웃던 그. 그에게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가식적인 포장 대신 솔직함과 호탕함의 매력이 물씬 묻어났다.
“눈부시게 푸른 청춘! 남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그 소리가 아직 안 들린다고 너무 안달복달하지는 말고.”
조금, 아니 많이 잘난 그의 마지막 당부가 가슴 속에 깊이 꽂히는 것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진심어린 젊음, 청춘에의 교훈 때문은 아닐까.

 

심주용 기자 simjudy@yonsei.ac.kr
자료사진 한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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