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흥가 주변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젊은이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물들인 금요일 밤이 지나면 토요일 새벽이 온다. 한바탕 폭풍이 지난 것 같은 토요일 새벽, 유흥가는 고요하지만 널브러진 전단지와 그 전단지를 닮은 사람들이 금요일 밤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 자리를 지나가는 동심이 있다. 바로 유흥가 주변의 초등학교에 통학하는 학생들이다.

어린이가 본 ‘프라이데이나잇’의 그림자

“토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그날 아침에 본 광경을 말해주곤 해요” 홍대앞에 위치한 서교초등학교 이수영 교무부장은 말했다. “치마가 뒤집어진 채 길바닥에 쓰러진 여성부터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채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까지 해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죠” 

 

서울창서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학생들 너머로 술집이 보인다.


우리대학교 근처에는 대학생들이 젊음을 즐길 수 있는 신촌 혹은 홍대앞 등의 유흥가가 조성돼 있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지만 이 지역에 거주하는 어린이들 역시 직·간접적으로 유흥가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유흥가를 이용하는 어른에게 초등학생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이 통학하는 시간과 술집이나 클럽 등의 유흥가가 영업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신촌 창서초등학교의 한 교사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초등학생들 중 상당수는 유흥가 맞은편에 위치한 주택가에 살기 때문에 통학할 때 유흥가를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 주변의 주택가 이외에 여러 장소에서도 초등학생들이 등·하교하기 때문에 유흥가를 지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유흥가를 지나 통학을 하든 그렇지 않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위치한 유흥가는 초등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학교 담장이 유흥가의 소음까지 막을 수 없어 초등학생들은 학업을 하는 도중에 소음공해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 교사는 “밤 시간대 뿐만 아니라 낮에도 유흥가에서 소음이 들린다”며 그에 따라 수업이 방해받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흥가와 그곳에서 접할 수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 학생들을 자극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초등학생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성인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유흥가 주변 초등학생들은 눈을 돌리면 쉽게 탈선할 수 있고 이것이 술에 취한 어른들을 모방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조성남 교수가 쓴 「청소년의 하위문화와 정체성」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또래끼리 쉽게 따라하는 특성이 있고 탈선하는 학생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유흥가의 초등학생이 겪을 탈선의 파장은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

21세기 초등학교 오후반엔 어른이?

이 부장이 꼽는 가장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유흥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가 주민들에게 개방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종종 동심의 장에 들어와 음주를 즐긴다. “성인 남성들이 아이들이 사용하는 미끄럼틀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는 이 교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유흥가에 위치한 초등학교는 초등학생들만의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대학생을 비롯한 유흥가 이용객들은 초등학교 안에서 유흥을 즐긴 후 음주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흔적을 지우는 몫은 고스란히 초등학생들에게 전가된다.
창서초등학교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관은 “다른 학교와 달리, 창서초등학교는 유흥가 주변에 학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학교 안에는 이미 몇 무리의 어른들이 있었다. 학교가 개방되지 않았더라도 나지막한 담을 넘으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늦게까지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초등학생들은 드물다. 방과후,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를 따라 곧바로 학교를 떠난다. 기자가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도 교문 주위는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홍대앞 서교초등학교에서 자녀를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학교가 끝난 후 학원이 시작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는데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해 자녀를 데리러 온다”고 말했다. 학업 사이의 시간이 ‘여유를 즐기고 노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의 순수함이 침해받을 수 있는 위험한 시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유아보다 철없는 어른들의 유아독존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초등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흥가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 200미터까지 지역을 상대정화구역으로 정한다. 정화구역 내에는 유해시설이 입지할 수 없다. 법이 정하는 유해시설은 ‘청소년이 입장할 수 없는 영화 상영관’이나 ‘노래와 음주가 동시에 허용되거나 유흥종사자가 근무하는 영업’ 등으로, 주류를 주로 판매하는 ‘술집’은 법적 유해시설이 아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볼 때 유흥가 옆의 창서초등학교 등은 안전지대에 위치한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은 국가의 보살핌을 받는다기보다 부모의 관심에 의지한 보호밖에 받을 수 없다.
초등학생들을 위한다면 무해한 환경만을 제공해야겠지만 상대정화구역의 범위를 더 넓히는 등의 방법을 강구하면 주위의 상권이 죽기 때문에 학교 주변 유해환경제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박경자 교수(생과대·아동발달)는 “신촌의 경우 유흥가를 주로 이용하는 우리대학생들과 영업을 하는 상인들은 신촌 유흥가의 혜택을 입는다”며 “그 유흥가를 제한하는 것이 초등학생을 둔 부모를 제외한다면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초등학교 주변의 유흥가가 차단되기 힘들기 때문에 유흥가를 이용하는 대학생 등의 성인들이 의식을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유흥가를 제거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부를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유흥가 자체의 존재보다 그를 이용하는 어른들의 행태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부장이 지적한 것처럼 ‘아이들이 통학하는 시간에도 어김없이 차도를 가로지르는 대학생들의 무단횡단’과,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아침거리를 활보하는 태도’가 어쩌면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큰 유해환경일 수 있다. 거침없는 젊음에 대한 건배를 하기 전에 우리 옆에서 소리 없이 자라고 있는 동심을 생각해보는 것이 우리가 어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김정현 기자 iruntoyou@yonsei.ac.kr
사진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자료사진 다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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