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르포

정구현(인문과학부·10)씨는 아침 수업을 들으러 청송관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같이 경사로를 통해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은 고장나 있었다. 정씨는 어쩔 수 없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야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었다.


아침 11시 30분, 이희주(철학·08)씨는 5교시 수업을 위해 일찌감치 기숙사를 나섰다. 기숙사 앞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뒤로하고, 그는 무언가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의 앞에는 노란색의 장애인 콜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저상버스가 아니기 때문에)셔틀버스를 이용해 본 적도, 이용해 볼 수도 없어 콜택시를 이용해요”라고 그는 힘들게 한마디씩 건넸다.

강의실에 오르는 ‘여정’


이씨가 콜택시에서 내린 곳은 강의실이 아닌 백양관 앞. 그는 자신의 두 다리인 전동휠체어를 조종해 백양관 우측에 마련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다. 백양관 로비에서 남측동으로 향하는 첫 번째 복도를 따라가면 장애학생지원센터인 ‘새움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이씨는 얼마간의 휴식을 취했다. 수업시간까지 10여 분정도 남았을 시각, 이씨의 이동을 돕는 근로 도우미가 새움터로 들어왔다. 근로 도우미와 함께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 이씨는 위당관에 있는 강의실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백양관 밖으로 나와 불과 몇 바퀴 이동하자, 눈앞에는 ‘골고다 언덕’이라는 종합관으로의 고비가 등장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근방에 학생들의 헉헉대는 숨소리가 가득하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기는 일반학생들에게도 고역인 것이다. 전동휠체어에 의존하는 이씨는 이 언덕을 혼자 오를 수 없다. 반드시 근로 도우미가 그의 뒤를 받쳐주어야 한다. 이씨는 이동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오르내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또한 앞을 보지 않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내려오던 학생과 이씨가 부딪힐 뻔하는 아찔한 순간도 여러 번 벌어졌다. 근로 도우미 이하림(컴퓨터·06)씨는 “실제로 희주가 이 언덕에서 이동하다가 넘어졌던 경험도 있었다”며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이희주씨가 언덕을 가로지르려다가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휠체어가 뒤집힌 것이다. 이희주씨 역시 “세 번 정도 이처럼 넘어졌던 기억이 있다”며 “이동하기에 보다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휠체어 장애학생은 도움 없이 연희관에 들어갈 수 없다

연희관 강의실로 가는 길 역시 이희주씨에게는 힘들기만 하다. 연희관은 입구부터 계단에 올라서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돼있어 도우미가 장애학생의 이동을 도와야만 한다. 건물 내에는 엘리베이터도, 리프트도 설치돼 있지 않다. 새움터 조교 이웅(사복·석사3학기)씨는 “현재 연희관에 장애학생을 위한 엘리베이터 신설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관재처 류필호 부처장은 “현재 연희관 전 층 엘리베이터 설치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동을 신축하려면 리모델링을 거쳐야 하므로 당분간은 장애학생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백양관 역시 연희관과 마찬가지다. 학부생이 1학년 때 필수로 들어야 하는 글쓰기 수업은 대부분 백양관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백양관 역시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지 않기에 장애학생들은 곤란을 겪는다.
한편 기숙사비가 가장 저렴한 원주캠 매지학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때문에 장애학생들은 기숙사 선택에 제약을 받고 있다.

 


장애학생은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강의동 뿐 아니라 우리대학교 학생이라면 당연히 이용할 수 있어야할 시설들 앞에서 장애학생들은 난처함을 겪는다. 지난 2008년 개관한 학술정보원(아래 신중도)은 최근에 신축된 만큼 비교적 장애학우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장애인용 화장실이 전 층에 배치돼 있고 실내의 모든 구역에 턱을 없앴으며 장애인석이 따로 마련돼 있는 Information Commons B구역 쪽에 장애인용 리프트도 설치됐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석의 위치는 가장 구석에 있어 또 다른 불편함을 낳는다. 일반학생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과 이용 후 정리하지 않은 의자로 인해 장애학생들은 장애인석으로 쉽게 드나들 수 없다. 또한 신중도에서 장애인석을 제외한 모든 시설은 키오스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김을환(심리·00)씨의 “키오스크가 너무 높아 휠체어를 탄 채로 이용하기에 불편하다”는 말처럼 실제로 키오스크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만 맞춰져 설치 돼 있다.

한편 시각장애인인 김아무개씨는 “중앙도서관 바닥에 붙어있는 미끄럼 방지턱이 오히려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2급인 김씨는 바닥의 색과 유사한 미끄럼 방지턱을 구분하지 못해 걸려 넘어질 뻔한 경험이 수차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계단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은 군데군데 없어져 빈 자리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체육관에 진입하는 길은 경사로가 아닌 계단으로 이뤄져 있어 장애학생들은 자력으로 오를 수 없다. 체육관으로 들어서던 스포츠레저학과 부회장 최윤석(스포츠레저·09)씨는 “워낙 체육관이 낡아 일반학생들도 이용하기에 불편한데 장애학생의 경우는 어떠하겠느냐”며 되묻고 “장애학생을 위한 탈의실이나 화장실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체육관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어둡고 비좁은 복도가 하나 나타난다. 장애학생들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구조다. 체육관 뒤쪽에 위치한 체육교육관도 마찬가지다. 수영장과 체조실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역시 1층부터 4층까지 계단으로만 이뤄져 있다. 김씨는 “경사로도, 리프트도 없어 이용하는데 제한을 받는다”며 “장애인이기 때문에 운동도 하지 못해야 하나”라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학생회관 1층에 가기 위해서는 멀리 돌아가야 한다

 


장애학생에게 학생회관이란 루스채플 쪽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도 없어 2층부터 4층에 있는 복지시설들을 장애학생들은 이용할 수 없다. 이희주씨는 “위층에 있는 총학생회나 무악극장에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장애학생들이 갈 수 없는 공간들이 학내에 많다

원주캠 세연학사 역시 문제가 있다. 장애학생이 연세프라자에서 세연학사로 가려면 가파른 계단이 길을 가로막는다. 이곳엔 어떠한 경사로도 마련돼 있지 않다.

 


장애학생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장애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지만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곳도 더러 있다. 제1공학관 1층 장애인 화장실 문 앞에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그 중 ‘흡연실로 사용하다 적발 시 엄중처벌을 가함’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경비실에 찾아가니 경비 아저씨는 “예전에 몇 번 학생들이 그 속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혼을 낸 적이 있었지”라고 넌지시 얘기해준다. 이어서 그는 “잠잠해졌다 싶었는데 요즘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라며 화난 듯이 말을 덧붙였다.

종합관의 엘리베이터는 본래 계단으로 다닐 수 없었던 장애학생을 위해 지난 2004년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혜택을 일반학생들이 오히려 더 많이 누리고 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매 시간 50분에서 정각 사이, 엘리베이터 앞 복도는 학생들의 줄로 가득 찬다. 옆에 세워진 ‘장애학우 먼저 탈 수 있도록 양보해 주십시요’라는 입간판이 무색할 만큼 학생들은 단지 이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을지 만을 노심초사해할 뿐이다. 일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이희주씨는 “휠체어 장애인을 보기만하면 서로 비켜주는 일본에 비해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새움터 조교 이웅씨는 “학생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프린트물을 제작해 나눠주는 형식으로 캠페인을 벌이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며 씁쓸해했다.

 

학생들은 장애학우를 배려하기 보다는 엘리베이터를 놓치는 것을 걱정한다

이희주씨는 “가끔씩 멈춰서서 잠시만 주위를 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장애학생들은 가까이있고 일반학생들이 당연시 여겨왔던 것에 불편을 겪고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일 때 차별 없는 캠퍼스가 실현될 수 있다.

 


박혜원, 송명근 기자 2pm@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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