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각 세계를 지배했던 언어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차이

지난 2007년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 사람들은 그 사건을 ‘미국 사회에서 한인 2세들의 문제’라고 규정한 반면, 미국 사람들은 ‘폭력성을 가진 싸이코패스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이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동·서양은 각각 특정한 사건을 바라볼 때 사회적, 개인적인 관점이라는 다른 사고방식을 취한다. 행동주의자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존 왓슨은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어쩌면 동·서양의 중심 언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어와 한자에서 기원한 것이 아닐까?

 

유럽을 지배한 Latin

라틴어는 기원전 2천년 경 이탈리아의 북동쪽 아드리아 해안 지역에 살던 라틴 부족들이 처음 사용해 라틴 부족 모두에게 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전후로는 라틴어가 그리스의 알파벳을 받아들여 라틴어 알파벳이 만들어졌다. 라틴 부족 중 하나였던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하고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라틴어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이 속해있는 로만스어의 모태가 됐다. 이에 대해 문경환 교수(문과대·통사론및고전문헌학)는 “과거 로마 제국은 그들이 점령한 지역에 자신들의 언어인 라틴어를 전파하려 노력했는데, 그 지역들에서 사용하던 라틴어의 사투리들이 각 민족의 언어로 성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민족 언어가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서양 세계는 라틴어가 지배해왔다. 로마가 멸망했더라도 로마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했고, 기독교의 교리는 모두 라틴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라틴어가 일종의 국제어로 통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났던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 운동으로, 로마의 고전 문헌을 해석하기 위해 라틴어가 계속 연구되고 남아있을 수 있었다.

아시아를 지배한 漢字

서양의 역사 속에서 라틴어가 중심 언어의 역할을 했다면, 오랫동안 동양의 중심 언어의 역할을 했던 것은 한자다. 한자가 만들어진 것은 대략 기원전 3천년 경으로, 상나라 시대의 수도였던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를 한자의 시초로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한자가 만들어진 이후 글자 형태는 계속해서 변화해왔고,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에 한자가 영향을 미쳤다. 이규갑 교수(문과대·중국문자학)는 “동양 세계에서 한자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원인은 동양에서 중국의 힘이 컸던 것도 있지만, 동양 세계에 한자 외에는 다른 문자가 전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양의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는 한자는 나라마다 글자 형태도 다르고 글자가 가진 의미도 다르다. 예를 들어 ‘공부’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가 우리나라에서는 ‘工夫’로 표기되는 반면, 일본에서는 ‘勉强’으로 표기된다. 이 교수는 그의 저서 『한자가 궁금하다』에서 “한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의미가 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각 나라에서 필요에 따라 글자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하거나 새롭게 글자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각 나라의 한자들이 모두 다르다”고 설명했다.

집단 중심의 동양, 개인 중심의 서양

그렇다면 라틴어와 한자의 차이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까? 언어인류학자 사피어와 워프가 주장한 언어 상대성 가설에 따르면 언어 구조상의 차이가 사고 과정의 차이를 낳으므로, 라틴어와 한자 각각의 구조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그것이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박동환 명예교수(우리대학교·중국고대논리사상)는 그의 저서 『안티호모에렉투스』에서 “라틴어에서 파생된 서양의 언어들에서는 하나의 단어가 가리키는 의미가 명확하기 때문에 문장을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반면, 한자는 글자 하나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문맥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의 차이에 대해 연구하는 우리대학교 철학과 장용수 강사는 “문맥 속에서 파악되는 한자의 사고방식이 동양에서 인간을 사회의 일부라고 바라보는 사고와 비슷하며, 서양의 언어들에서 하나의 단어가 가리키는 바가 명확하다는 사고방식이 개성이 강한 개인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사고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장 강사는 “동양에서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문제를 찾았던 것에 반해, 서양에서는 개인을 중심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찾았다”며 동·서양의 차이를 구체화했다.

오늘날까지도 동·서양인들의 사고와 문화는 분명 다르다. 그 차이의 출발점은 어쩌면 서양의 대표 언어였던 라틴어와 동양의 대표 언어였던 한자, 이 두 언어의 차이에 있을 수 있다. 각각의 언어를 통해 독립적으로 발전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모두 인류에게 소중한 유산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서양적 가치보다 동양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각기 다른 역사와 언어를 갖고 다른 차원의 문화를 발전시킨 동·서양의 가치를 조화롭게 수용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임우석 기자 highbiz@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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