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구례의 천연 염색 장인, 안화자씨를 찾아

4시간여 고속버스를 탄 후 매표소 밖에 없는 단출한 버스터미널에 도착, 다시 낡은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그러고도 드문드문 있는 밭과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서야 전라남도 구례군 수평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조용하고 평범한 이 마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천연 염색 장인, 안화자씨와 그녀의 천연 염색이다.

인사동에서 구례로

안 장인은 40년 가까이 천연 염색과 함께 해왔다. 원래 인사동에서 민예품 가게를 하던 그녀는 색지, 자수, 매듭 등 규방 문화에 빠져들었다. 색지와 실의 고운 색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이를 만들어내는 전통 방식의 천연 염색에 이르게 됐다. 단절돼 있던 천연 염색을 연구하고, 직접 염색을 할 최적의 장소로 그녀가 선택한 곳이 바로 구례다. 안 장인은 “염색의 기본이 되는 재료인 쪽과 홍화의 원산지가 이집트 같은 따뜻한 지방이기 때문에 서울보다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왔다”며 “계곡, 연못 등 염색에 필요한 환경들도 여기에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 장인의 집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근처에는 홍화 밭이 자리 잡아, ‘이곳이 천연 염색 장인의 집이오’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천연 염색, 끝없는 정성의 결실

기계로 모든 과정을 해결하는 화학 염색과 달리 천연 염색은 염색 장인의 정성이 중요하다. 천연 염색 중에서도 안 장인이 주로 하는 것은 붉은 색을 내는 홍화 염색인데, 그 과정이 여간 수고스러운 것이 아니다. 먼저 재료가 되는 홍화 꽃잎을 따는 작업부터 만만치 않다. 새벽에 이슬이 앉아 홍화 꽃에 있는 가시가 부드러워졌을 때 손으로 일일이 꽃잎을 따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딴 꽃잎을 절구에 찧어 홍떡을 만들고 그것을 발효시킨다. 이것을 포대자루에 넣고 냇가에서 밟아 황색을 빼내면 홍색만 남는다. 그 후 대나무 위에 놓인 한지에 이를 올려놓고 잿물을 통과시키면 알칼리성을 띠게 된 붉은 물이 나온다. 오미자나 매실을 넣고 이를 중화시키고, 여기에서 앙금이 나오면 이것이 바로 ‘연지’다. 이 연지를 따뜻한 물에 풀면, 드디어 염색을 할 수 있는 안료가 완성된다.

이처럼 안료를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에 염색을 하는 과정이다. 염색의 ‘염(染)’이라는 한자를 보면 물 수(水), 아홉 구(九), 나무 목(木)으로 구성돼 있다. 즉, 물과 나무를 이용해 아홉 번을 염색한다는 뜻이다. 물을 끓이고 식히고 천을 물에 담그고 헹구는 것이 하나의 공정인데, 이를 아홉 번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천에 맨 처음 염색한 것은 준비과정으로 여기기 때문에 사실상 최소 열 번의 염색을 반복해야 진정한 천연 염색이라고 볼 수 있다. 안 장인은 “천이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안료에 한계가 있어, 여러 번 해야 염색이 더 잘 된다”며 “우리가 밥 다섯 공기를 한 번에 못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런 수고스러움 때문에 값이 비싸 과거에는 염색한 옷을 사치라고 여겼다. 우리 민족을 칭하는 ‘백의민족’이라는 명칭에는 사실 흰 옷을 입어야 했던 서민들의 속사정이 숨어있었다. 형편이 되지 않는  서민 가정에서는 염색하지 않은 흰 옷 밖에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재력가들 사이에서는 입은 옷의 염색이 얼마나 잘 됐는지가 그 사람의 부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처럼 천연 염색은 아무나 향유할 수 없는 문화였다.

 

 

우리 색이 좋은 색이여

화학 염색이 특정한 색을 명확히 표현해내는 반면, 천연 염색은 그 색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획일적인 색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안 장인은 “전통의 오방색이라는 것이 한 가지 색으로 고정돼 있지는 않다”며 “홍색은 적색보다는 불그스름한 색이고 흰색은 백색보다는 소(素)색*이듯, 단일한 색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계열의 다양한 색을 모두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복합적인 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천연 염색을 한 것은 어디에 둬도 주변과 잘 어울리고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자연과의 친화를 중시했던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천연 염색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색이 나오기까지 변수가 많은 것 또한 천연 염색만의 매력이다. 천연 염색은 천이나 준비과정과 같은 조건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금방 색에서 드러난다. 물이 마르면 색이 더 연해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안료가 미처 스며들지 못했던 부분도 염색이 되면서 다른 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재료에 있어서도 제철에 나는 천연 재료로 염색하기 때문에 해마다 색이 달라진다. 이 모든 변수가 경험으로 쌓여 염색 장인만의 천연 염색 레시피가 된다. 방식 자체는 예전의 색을 재현해내는 식이지만 매번 색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든 색이 각각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다. 안 장인은 “색이 나올 때마다 연구하는 즐거움도 있고, 그를 바탕으로 내가 원했던 색을 만들어냈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천연 염색이 헤쳐가야 할 난관

이같은 천연 염색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최근에는 웰빙이나 로하스(LOHAS)* 등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천연 염색에 관심을 보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값이 비싸기도 하고, 양복(洋服)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화학 염색에 익숙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화학 염색이 시작된 것은 서양 문물과 함께 화학 염료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이후 일제시대와 전쟁기를 거치면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검은 옷이 빠르게 퍼지게 됐고, 이에 따라 천연 염색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게 됐다. 안 장인은 “검은색을 내려면 엄청난 양의 화학 염료가 필요해서, 사실 아무 거리낌 없이 입는 검은색 옷이 가장 몸에 안 좋다”며 “옷감의 재료가 유기농인지를 따지는 것처럼 색 또한 천연의 색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장인은 천연 염색의 전통을 올바로 잇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인식 제고뿐만 아니라 천연 염색을 하는 사람들 또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연 염색이라는 단절돼 있던 전통문화가 갑자기 언론을 타며 각광을 받자, 몇몇 제조업자가 제대로 염색이 되지 않은 것을 상품화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안 장인은 “그런 사람들로 인해 소비자들이 천연 염색은 물이 금방 빠진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모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염색을 하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를 그대로 판매하면 천연 염색 자체에 대해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인의 장인 정신

급속도로 서구화되는 우리 사회에서 천연 염색이라는 우리나라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안 장인의 천연 염색에 대한 고집은 확고했다. 안 장인은 “나는 ‘천연 염색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천에 염색하는 것까지만 작업한다”며 “매듭이나 옷 등을 같이 만드는 사람도 많지만, 자기 분야의 것을 더욱 깊고 정밀하게 파고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천연 염색에 대한 신념을 이야기했다.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갖가지 원색이 눈을 찌르는 신촌거리를 떠나, 구례의 한적한 풍경 아래에서 만난 천연 염색은 곱디고왔다. 색색깔의 천들에서는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는 자연의 색들이 보이는 듯했다. 인위적으로 획일화된 색이 아닌, 그야말로 자연에서 가져온 천연 염색의 색은 ‘예쁘다’는 말보다는 ‘곱다’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렸다.


*소(素)색: 새하얀 백색이 아닌, 삼베나 모시 옷감과 같은 누르스름한 흰 색.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건강, 환경, 사회정의, 자기발전과 지속가능한 삶에 가치를 두는 경향

 

고된 수작업을 고집하는 안화자 장인의 모습

 

이재은 기자  jenjenna@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자료 사진 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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