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대화』전시 체험기

눈을 감았다. 그게 나을 듯했다. 그러나 스무 해 남짓의 습관은 눈꺼풀을 다시금 올려버렸다. 힘을 준 눈꺼풀을 비웃기라도 하듯, 망막에는 어느 것 하나 잡히지 않았다.

“저, 나갈래요. 포기할게요.” 어둠 속에서 들려온 떨리는 목소리 하나가 고막을 자극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완벽한 어둠, 그 낯섦은 한 인간을 두려움 속에 가둔 듯했다.

“괜찮아요. 여기에 위험요소는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로드마스터’의 목소리를 따라 낙오자를 뒤로 하고 들어간 어둠은 눈을 뜨고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냄새로 파인애플을 고르고, 소리로 시냇물을 느끼는 사감(四感)*으로서의 자아는 신세계에 발을 디딘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로드마스터는 나를 보고, 아니 느끼고 말을 걸었다. “정현씨, 이쪽으로 오셔야 돼요.” “네.” 대답을 하고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는 나를 어떻게 다른 사람과 구분했을까?’ 그는 기자뿐만 아니라 어둠을 같이한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일일이 불렀다. “이제 체험이 16분 남았어요.” 맙소사.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곳에서 그는 시간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목소리들은 속삭였다. “야간투시경을 썼나봐.”

아니었다. 그 역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감각장애인. 오감을 지니지 못한 그들은 비장애인들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비장애인의 세상과 다른 특별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었다.

『어둠속의 대화』전시(아래 전시)는 전문 로드마스터의 안내 하에 완벽한 어둠 속에서 숲속, 시장, 카페, 보트 등의 체험 코스를 경험하는 참여형 전시다. 이 전시는 8명 이하의 소수인원으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NHN 소셜엔터프라이즈’는 시각장애인이 중심인 기업이다. 14명의 직원 중 ‘정상’인은 3명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전시회’를 총괄 감독하는 송영희 대표도 기자를 응시할 수 없는 ‘사감의 사람’이었다. “우리 전시는 시각장애 체험이 아닙니다. 시각장애라는 핸디캡을 오히려 강점화 하는 새로운 문화사업이죠.” 그는 전시가 줄 수 있는 시각장애인 고용 효과보다, 체험을 한 사람들이 깨게 될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장애인 스스로 느낄 도전욕구 등 부가적 효과를 생각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송 대표의 바람을 알기라도 한 듯, 사회복지사의 추천으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둠을 체험하게 됐다는 핫토리준코씨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냄새나 촉각으로 세상을 체험하게 됐는데 그것만으로도 눈이 보이는 것처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신선한 체험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시회에 참여하기 위해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이재봉씨는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실명은 최악의 상황일 수 있는데 체험자들끼리 서로 믿고 의지하며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로드마스터는 어떻게 사람을 구별한 건데?”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초능력’ 혹은 ‘직감’ 쯤을 예상했던 기자의 생각을 부끄럽게 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서로 입은 옷이 다르잖아요. 옷의 질감을 만져보면 사람을 구분할 수 있죠.” 비장애인에 비해 부족한 감각을 극복하는 방법이 그들에겐 쉬운 듯했다. 전시 시간을 정확히 잴 수 있었던 비밀은 그의 시계에 있었다. 그 시계는 손으로 시계바늘을 만져 시간을 알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어둠속의 대화』전시

『어둠속의 대화』는 △성인은 3만원에 △화~금요일에는 낮 12시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주말에는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전시회는 신촌역 3번 출구 버티고타워 9층에 위치해있다. △예약필수

 


*사감(四感): 오감 중 시각을 제외한 청각, 미각, 촉각, 그리고 후각을 이르는 말

김정현 기자 iruntoyou@yonsei.ac.kr
자료사진 NHN 소셜엔터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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