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높이 신발에 깔창까지 깔면 최대 몇cm까지 커질 수 있죠? 키 때문에 너무 고민이에요’

모 포털사이트 지식게시판에 올라온 새 게시물. 진지한 답변이 서너개 달린다.

의도치 않게 ‘루저’가 된 남자들은 이제 키높이 신발과 깔창을 필수라고 여긴다. 그들의 관심사는 더 이상 깔창을 까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깔창을 깔 것인가’다. 여자들은 비쩍 마르고 예쁜 연예인들을 보며 ‘코를 세웠네’, ‘다리에 주사를 맞았네’하며 트집잡지 못해 안달이지만 정작 자신도 44사이즈가 되려고 일년내내 다이어트에 종사한다.

이런 경향은 최근 구인구직 포탈 ‘알바몬’이 대학생 1천4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성별에 관계없이 대학생의 약 98%가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듯 여성의 미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요즘은 남자들까지 합세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무슨 열풍이라도 분 것인가?

‘몸의 인류학’을 강의하는 문화인류학과 백영경 강사는 “그렇지 않다”며 의심을 일축한다. “아름다워지려는 욕구는 예전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있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로마시대에 남성이 화장을 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면도도 이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가정백과라 할 수 있는 「규합총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남자들이 화장을 하고 귀고리를 했다.

그래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 지지 않는다.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몸이 전례 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체감 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백 강사는 “미의 추구는 예전과 다르지 않지만, 최근에 와서 달라진 점은 ‘기술’이 생겼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를 동경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변형을 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성형이나 보톡스 같은 시술은 ‘비싸지만 어떻게든 졸라매면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으로 맞춰졌고 성형에 대한 의식도 관대해졌다. 예전엔 ‘예쁘지 않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라고 여기던 것이 ‘예쁘지 않아. 그럼 고쳐야지’라고 의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백 강사의 표현을 빌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장애판정을 받는 세상”이 됐다.

크리스 쉴링은 자신의 저서 『몸의 사회학』에서 몸을 ‘육체자본’이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쉴링은 “몸의 형태에 부여된 상징가치들은 많은 사람들의 자아감에 특히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며 “몸을 평생에 걸쳐 수행해야 할 프로젝트로 취급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심리적으로도 신체와 외모가 가진 영향력은 막강하다. 정경미 교수(문과대·임상심리)는 “우리는 신체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더욱 능력있고 성실하며 착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몸이 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상호 의사소통망 속에 놓여있다”고 밝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몸이 가지는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야말로 몸은 개인이 소유한 ‘자원’이 되고 경쟁력이 된 것이다.

몸 때문에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자아에 대한 비관으로까지 연결돼 자아존중감까지 낮출 수 있다. 늘 빠르고 쉽게 변화하는 소비문화의 패션 시스템은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을 좇으면서 현재의 몸과 자아를 거부하라고 권유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압력들은 그들의 육체적 자아를 끊임없이 표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김혜진기자 2every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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