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휴머니스트, 그대에게

미국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께. 당신이 지구촌 사회에 행사한 엄청난 영향력은 사실, 지난 1월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어요. 당신과 함께 21세기 미국의 2대 지성인으로 꼽히는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하워드 진의 역사 저작은 수 백만 명이 역사를 보는 방법을 바꿨다. 그렇게 강력하고 유익한 영향을 준 다른 사람을 나는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죠. 사실 노엄과 당신은 민권운동을 함께 하다 둘도 없는 사이가 된 친구였다니, 역시 초록동색(草綠同色)이라는 말이 맞나보네요.

이정도로 대단한 세계석학이면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당신은 가난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자신 스스로가 민중의 삶을 살았기에 당신이 후에 민중사가가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당신은 당시에는 옳다고 여겨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평생 반전을 주장하게 됩니다. 참전군에게 주어졌던 혜택으로 중단했던 학업도 이어나가 역사학과 정치학, 경제학 등의 연구를 계속해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는데, 당신의 교수 생활은 평범치 않았습니다. 흑인 여자대학인 스펠먼 대학의 교수로 있을 때에는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해고당했고, 이후 인종차별 반대운동이나 반전운동, 민권운동 등으로 여러 차례 감옥을 드나들기도 했죠.

행동하는 데 지치는 줄 몰랐던 당신은 저술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서 평생 동안 무려 40권에 육박하는 책을 쓰기도 합니다. 하나하나 접한 당신의 저서들은 그야말로 ‘급진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책으로는 단연 『미국 민중사』가 꼽힙니다. 특히 당신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를 이 책에서 기술했고, 이제 『미국 민중사』는 전세계 진보진영의 대안 교과서가 됐습니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역사가들은 승자들의 이야기로만 가지런히 빗겨진 상태를 벗어나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해야 한다”고 말했고, 당신은 그의 이념을 역사 연구와 서술 모두에서 제대로 이행해낸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있죠.

특히 당신이 생전에 가장 마음에 드는 저서로 지목했던 책인 『역사 정치학』에서 당신이 역사를 바라본 관점은 바로 역사의 주체가 지도자나 통치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이라고 보는 ‘민중사관’이었죠. 전통적인 역사서술의 기본적인 틀은 바꾸지 못한 채 서술되거나 단편적인 일상에만 집중해 너무 미시적이었던 그동안의 아래로부터의 역사서술과 비교해 당신의 민중사적 접근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당신은 기존의 역사에 가려져 있던 나머지 반쪽 진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의 균형적인 시각이나 관점을 담보하게 됩니다.

또 당신은 과거의 승자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데,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근본적으로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당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역사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라, 패자들의 과거는 비록 결과적으로는 패배했더라도 저항의 흔적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당신에 의해 과거는 긍정적인 힘으로 승화돼 지금의 또다른 패자, 또는 미래의 패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이렇게 당신이 서술하는 역사는 특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의 자서전 제목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도 보이듯 당신은 “어떤 경우든 역사학자는 중립을 선택할 수 없다. 역사학자는 달리는 기차 위에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라고 했죠. 이는 당시까지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역사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의 이런 비객관성 추구는 역설적으로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가지는 각기 다른 입장이야말로, 그리고 그런 입장들이 모여서 서로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기존 역사서술의 틀을 깨나가는 당신의 태도는 우리에게 충분히 ‘급진적’이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당신에 대해 논문을 쓴 서강대학교 사학과 최성철 강사는 당신의 역사관은 급진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라고 합니다. 실천이 뒷받침된 이론만이 참된 이론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패자와 함께 행동을 수반한 당신의 이론은 진정한 이론 그 자체였다는 것이죠. 이런 당신의 신념은 지난 2005년의 스펠먼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제대로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그렇게까지 투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뜻입니다. 영웅이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무언가를 해보라는 뜻입니다. 그 작은 것이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있었던 미국의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 한국의 우리는 당신을 잘 알지 못했지만, 당신은 우리나라의 민중에까지 손길을 뻗었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용산참사 구속자나 촛불집회 참가자 등 시민들에 대한 반민주적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하는 성명에 참여한 것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죠. 당신은 떠났지만, 한시도 ‘패자’ 그리고 ‘비주류’를 잊지 않고 거리에서 언제나 그들의 힘이 되어 준 당신의 휴머니즘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살아 숨쉴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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