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봉하마을을 찾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에서 발췌


지난 2009년 5월 23일, 잔잔하게 불던 바람이 잠깐 멈춰선 아침 6시 40분 경,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에 올랐다. 그것이 노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바보를 떠나보내며 사람들은 서울광장을 노란빛으로 채웠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고향, 봉하마을에 안장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지난 4월 25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추웠던 4월 중 유난히 따뜻한 날이었다. 생가 앞에 노란 유채꽃이 피어있었다.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도 노란색 전시관이 두드러졌다. 그가 떠난 지 1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적힌 ‘아주 작은 비석’에는 국민들의 다녀간 흔적이 꽃으로 남아있었다.

노 대통령의 '아주 작은 비석'에는 그를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유독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마을 입구부터 노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플랑이 붙어있었다. 어깨띠를 하고 봉하마을을 방문한 출마자도 있었고, ‘진보의 미래’라는 기치를 내건 국민참여당 당원들도 왔다. 국민참여당 영남지부에서 온 이준섭(34)씨는 노오란 꽃다발을 임시 묘역에 바치고 참배했다. 이씨는 “당원대회를 마치고 단체로 봉하마을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을 “지역감정을 최소화하고 정의를 우선시 했던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이고픈 사람들

묘역의 뒤편, 봉화산에는 정토원이 위치해있다. 정토원은 노 대통령의 유골이 49일 동안 안장됐던 절이다. 얼마 남지 않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정토원에는 많은 연등이 걸려있었다. 관계자는 “연등은 대부분 정토원의 신도가 아닌 외부에서 오신 분들이 단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차원에서 연등을 달고 가시는 분이 많다”라고 밝혔다. 그와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정토원에서 부엉이바위로 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김해시에서 “부엉이바위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며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정토원을 지나 사자바위로 향했다. 바위 주변에는 대나무가 무성했다. 사자바위에 오르니 봉하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묘역 조성과 추모 영상관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가까이 보였다. 멀리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본 봉하마을의 전경

현재 봉하마을에서는 묘역을 조성하는 공사가 추가로 진행중이다. 노 대통령 묘역 주위에 국민들의 추모글귀가 새겨진 박석 1만 5천장이 새로 설치된다. 봉화재단 김경수 사무국장은 “오는 23일에 추도식과 함께 묘역 조성 완공식을 한다”며 “몇 몇 박석들은 완공식 때 문구를 소개하고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16일(일)에는 추모 영상관이 개관한다. 김 사무국장은 “기념 도서관을 건립하기 전에 노 대통령의 비전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추모 영상관을 설명했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소쩍새가 우는 풍경”

노 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의 고향인 봉하마을을 ‘모두가 잘사는 농촌, 아름다운 농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 생태계를 복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생태계를 복원해야 익충(益蟲)들이 번성하면서 생태농업의 근간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생전에 생태계를 복원하면 반딧불이, 소쩍새 등이 돌아온다며 “밤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소쩍새가 우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농촌을 만드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논에는 ‘둠벙(웅덩이)’과 수로를 만들었다. 익충이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부식생을 복구하기 위해 봉하산의 숲은 간벌을 했다. 봉하마을 주변에 있는 화포천은 김해 다이버 동호회의 도움을 받아 쓰레기를 걷어냈다.

김 사무국장은 생태를 위해 노력했던 노 대통령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지난 2008년 여름, 노 대통령은 새벽에 비서관들을 깨웠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에 나가낚시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노 대통령은 낚시꾼에게 “화포천이 깨끗해야 낚시를 잘할 수 있다”며 낚시 동호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동호회를 통해 화포천을 자발적으로 정화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 비서관에게 적게 했다. 이런 노 대통령의 활동은 한 달 내내 지속됐다.

민주주의는 자연속에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자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에서 대통령이 이루고 싶어 하던 사업들은 어떻게 될까?’라며 우려했다. 여러 가지 유기농 농법을 알아보고 오리농법, 우렁이농법을 주도적으로 도입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뜻은 ‘영농법인 봉하마을(아래 영농법인)’을 통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영농법인이 친환경 농업을 하는 땅은 처음 2.4만평에서 점점 늘어나 24만평, 그리고 현재는 32만평이 됐다. 특히 올해에는 봉하마을의 주변 경지도 생태농업을 하고, 인근 축사와의 계약을 통해 순환식 농업이 시작됐다. 순환식 농업이란 영농법인이 동물먹이로 짚 등을 인근 축사에 제공하면, 축사는 동물의 배변을 영농법인에 주는 것이다. 영농법인은 이를 거름으로 쓰게 된다.

또한 현재 영농법인에서는 ‘습지체험 프로그램(아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정호 대표는 “지난해에는 2천명이 프로그램을 경험했으며, 지난 4월에만 1천200명이 다녀갔다”며 “올해에는 8천명 정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가 단지 농촌 생태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프로그램에는 노 대통령의 뜻이 담겨있다. 그는 자연의 섭리에서 균형, 견제 등 민주주의의 원리를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만 이 원리를 체득할 수 있다고 봤다. 김 사무국장은 “대통령께서는 자연과 더불어 산 사람은 우주의 철학이 다르다는 표현을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습지체험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보고 배워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깨닫길 바랐던 것이다.

뜻을 잇기위한 자그마한 노력들

봉하마을은 노 대통령의 뜻을 잇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기자가 방문한 4월 25일에도 약 1백명 정도의 봉사자가 봉하마을을 다녀갔다. 김 대표는 “서울 다음카페 노사모의 경우 매월 2차례 버스를 대절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온다”고 말했다.

자연 생태계를 배우는 일은 이씨에게 봉사활동 그 이상의 의미다.

마을회관 뒤쪽에 있는 장군차밭에서 사람들이 김매기를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온 이재웅(43)씨는 “부산, 창원, 서울 등 여러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라며 “여기와서 봉사활동하다 친해진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원래 노 대통령 지지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서거 이후 노 대통령이 남긴 여러 글을 보면서 지지하게 됐다. 그 후 근 1년간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뜻을 잇는 것도 있지만 일을 하면서 자연 생태계를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그는 여기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난 사람과 오는 10월에 결혼식을 올린다며 웃었다. “노 대통령님이 저에게 짝을 점지해주신 거죠”

다시 바람이 분다

잠시 주춤했던 바람은 다시 불고 있다. 그는 죽었지만, 뜻은 죽지 않았다. 뜻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꿈이자 목표였던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는 세상, 그리고 모두가 살기좋은 농촌이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다. 부엉이바위를 둘러싼 노란 리본이, 다시 부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다시 부는 바람에 노란 리본이 흔들리고 있다.


허찬회 기자 ganapati@yonsei.ac.kr
사진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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