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종종 대학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로 외국 대학, 특히 미국 대학과의 비교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교수들이 SCI급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써냈는지, 도서관이나 실험실 등의 시설이 얼마나 구비되었는지, 국제화가 얼마나 되었는지 등을 미국 대학과 비교한다. 한국과 미국의 사회적 토양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교 방법은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다. 지난 개발 시대 동안 한국 대학 사회가 나름의 발전을 했다면 아마도 이런 비교법이 통한 것도 한 이유다.

그런데 종종 이런 비교법은 미국 대학의 다양한 측면 가운데 한 쪽만 채택되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할 때 이런 불균형이 나타난다. 흔히 교수들이나 언론은 “미국 학생들이 1년에 책을 몇 편이나 읽는지” “1주일에 몇 시간이나 공부하는지”를 인용하며 학생들을 채찍질하곤 한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들이 수업 외 공간에서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하는 지를 우리와 비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학외 활동 역시 대학의 역량이 되고 그 사회의 역량이 된다.

대학 신문 활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대학 신문사 홈페이지에서 신문을 만드는 구성원의 명단을 보면 놀라게 된다. 50명~100명에 달하는 인력 숫자도 놀랍지만 편집국장부터 사장, 발행인이 모두 학생이라는 점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심지어 광고국과 판매국 직원, 간부도 학생이 맡는 경우가 많다.

미국 대학 신문은 주5회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발행하는 신문의 분량도 30쪽이 넘는 경우가 많고 섹션까지 있어서 왠만한 책처럼 느껴진다. 신문에 등장하는 취재원은 총장부터 그 지역 사회 정치인까지 다양해서 기성 언론 못지 않은 취재력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특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내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하거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등 큰 사건이 생길 때, 대학 신문이 보도 내용을 외부 언론이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서, 총학생회장 선거 때 대학 신문이 사설로 지지선언을 한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신문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토론과 논박이 오가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도 크다. 미국의 저널리즘 수준이 세계 최고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훈련된 대학 신문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꼭 졸업해서 기자가 되지 않더라도 대학 신문사는 인재를 배출하는 양성소가 되기도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케네디 대통령은 하버드 대학신문 기자 출신이다.

한국의 현실을 보자. 신문을 평가하는 두 가지 기준으로 기사의 품질과 편집국의 독립성을 들 수 있다. 이 두 기준에서 우리 학보는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시사IN>은 올해 초 <제1회 시사IN 대학기자상>을 제정해 각 대학 학보를 평가하고 시상하는 행사를 열었다. 응모작이 236편이나 왔지만, 심사위원 3분의 첫 반응은 ‘상을 줄 만한 작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립성 쪽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발행인이 총장으로 되어 있어 구조적으로는 관보와 마찬가지다. 관례적으로 학생편집권이 행사되는 경우가 있지만, 편집권 독립이 명문화되지 못한 학보사가 많다. 품질과 독립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도 외면하게 된다.

왜 한국 학보사의 역량은 미국 대학 신문의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걸까. 미국 대학생이 한국 학생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남자 평균은 더 어린 편이다. 그들보다 우리 학생이 실력이나 열정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것 같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 기자에 대한 학교와 사회의 배려가 필요하다. 학보사 활동을 저널리즘 과목 학점으로 인정해 주고, 기성 언론사는 신입 채용 때 대학 언론 활동 경력을 살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보사 구조에 대한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KBS 사장이나 이사장이 대통령이 아닌 것처럼, 학보사 발행인이 꼭 총장일 필요는 없다. 학생,직원,대학본부가 모두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발행인을 선임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미국 대학신문들도 원래는 학교 소속이었다가 1970년대에 들어 따로 독립해나가는 역사를 밟았다.

물론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의 토양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미국식 대학 언론 체제를 따르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미국 대학 언론은 지역 신문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는 미국 대학의 기준을 들이밀면서 학생의 학외 활동 분야에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집한다는 것도 이상해 보인다. 미국 대학 가운데 연세대와 비슷한 독자 수나 비슷한 지역 공동체를 끼고 있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해방 이후 60여년간 고착화되어 내려오는 대학 언론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볼 때다.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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