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연씨의 『책의 운명』에 따르면 한 권의 책은 당대의 모든 사상, 문화 그리고 정치를 반영해 전달하는 매개체다. 따라서 서적에 대한 금지처분은 지식의 전달 도구로서의 문화매체에 대한 권력의 독점적 통제를 의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서조치가 행해진 주된 동기는 정치적·종교적·사상적 이유였다. 우리나라 금서의 시작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신식문물이 전통적인 불교와 유교의 권위를 흔들어놓은 삼국시대의 말기에는 도참서, 풍수지리서 등이 금서로 지정됐다. 고려시대에도 상황은 비슷했고, 대체로 집권층의 입장과 반대되는 내용의 서적들이 금서가 됐다. 금서로 지정되면 내용이 잘리거나 책 자체를 읽지 못하게 됐고, 글쓴이가 징벌당하기도 했다.

봉건체제에 기반한 조선시대에는 왕권과 지배세력에 도전적이거나 이색적인 학설을 펴는 행위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따라서 피지배집단이 통치세력에 맞서 변혁을 담은 내용의 책을 펴내면 지배세력은 이를 더 확산되지 못하게 막았고, 이단의 글로 몰아 유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홍길동전』도 당시 유학자들로부터는 반국가적, 반도덕적이라고 규탄받았다.

대한제국시기에는 구국과 계몽을 지향한 출판운동이 이뤄졌다. 신식출판기관의 설립을 통해 신문화는 지식인사회 일반과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제가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던 출판운동을 그냥 둘 리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정신을 담은 책을 금서화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노래집과 종교서적도 금서 조처됐다. 기록상 마지막 금서 조처를 받은 책은 한글사전이었다. 일제는 한국말로 된 책이라면 전부 금서로 지정, 철저히 탄압해 민족정신을 박멸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일제의 잔재는 독립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역사 속에서 되풀이됐다. 해방 후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언론·출판에 대한 통제는 점차 가중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부는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정권유지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자 했다. 4·19 학생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신문발행의 허가제가 등록제로 바뀌는 등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되는 언론출판의 황금기가 도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언론·출판의 자유는 다시 검열과 통제의 암흑기로 되돌아갔다. 뒤이은 유신시대는 우리나라의 언론·출판의 자유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위축되고 탄압을 받았던 시기였다. 금서가 다시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신 이래 원천적으로 출판의 자유가 제한되고 특히 제5공화국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한 출판사와 출판인에 대한 탄압이 이뤄졌다.

한편, 탄압의 대상이었던 금서는 ‘금서가 민주화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중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1980년대에 학생운동과 진보 지식인계는 특히 광주 민주화항쟁을 계기로 한국사회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당시 운동은 반 군사독재 저항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런 민주화 투쟁과 아울러, 보다 심도 깊은 한국사회분석을 위한 사회과학 도서의 출판과 학습이 전개됐다.

이런 사상적 무장운동의 근거와 주체가 된 것이 바로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운동’이었다. 여러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이 때 창립되고, 대학가 주변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들도 많이 생겨났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대학교수나 대학원생들이 저술, 번역한 진보적인 도서들이 무수히 출판됐고, 이런 학술운동 과정에서 당국의 검열로 탄압받아 금서가 된 도서들이 많이 생겨나게 됐다.

당시를 생생히 경험한 문국진 동문(철학·79)은 “ 『경제사 총론』 책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대학교 2학년 때에 위 책을 비롯한 영서, 일서들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됐던 경험을 떠올렸다. 이 책의 원제는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으로, 검열과 탄압을 피해 제목을 부드럽게 고쳐서 출판한 경우였다. 문씨는 이런 방법 외에도 외서를 정식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해적판’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별로 없었던 1980년대 초기에는 영서나 일서를 은밀히 구해 유통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페다고지』, 『타는 목마름으로』,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들은 당시 대학가에서 널리 읽히며 ‘운동권의 교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렵게 유통된 금서들은 당시의 대중들이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스스로가 한국사회의 변혁주체가 되고자 한 많은 운동가들이 이런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생겨났다. 이처럼 금서는 금기된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차원을 넘어,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도록 해주는 데 기여했다.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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