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제목들을 보아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벗겨 떨어지고, 빛깔이 바랜 그 책들의 황금색 글자들은 해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단어였다. 아예 제목이 없는 것도 있는가 하면 어떤 책에는 피처럼 보이는 거무스름한 얼룩이 묻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리고 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일인지 그 책들에서 희미한 속삭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들어와서는 안 될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걸 그것들이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

 - 조앤 롤링의『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中

 

 

 쓰는 사람, 막는 사람, 보지 못하는 사람

금서(Forbidden books)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해왔다.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두고 황제에 반하는 사상을 전파시킨다며 금서로 지정했고, 지난 1970년대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통찰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도 당대의 금서로 지정됐다. 이렇게 금서와 관련된 이해집단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금서를 쓰는 지식인이나 작가들, 이를 금서로 지정해 내용유출을 막는 지배집단,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보지 못하는 피지배집단이 그들이다.

금서로 지정된 책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불우한 삶을 살았다. 이상적인 절대군주를 논해 교황으로부터 지탄받아 금서로 지정된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했고, 군주정을 거부하고 평등한 이상국가를 그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반역죄로 처형당해 머리가 런던 다리에 내걸렸다. 이런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지식인들은 민중들을 계몽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배집단에 반하는 책을 써냈다.

지배집단이 금서를 지정할 때에는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1546년부터 1960년경까지 이단을 배척한다는 등의 종교적인 목적으로 금서목록을 지정해왔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프랑스 사회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담은 서적들을 금서로 지정했다. 이처럼 지배집단은 금서를 지정함으로써 지배집단에 대해 저항적인 피지배집단의 사상을 억누르고자 했다.

금서를 쓰면서든, 이를 막으면서든 금서의 내용을 지배집단과 지식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금서를 볼 수 없었던 피지배집단은 어땠을까? 금서로부터 차단당한 피지배집단은 온갖 수로 금서를 구하다 수감되는 등 어떻게든 금서의 내용을 알고자 했다. 한 예로 1928년 영국에서 발표된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발표당시부터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발행이 금지됐고, 출판에 대한 재판을 두고 각종 언론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유명해지게 됐다. 책의 내용은 모른 채 이런 논쟁만을 보면서 대중들은 책의 내용을 자기 멋대로 상상하면서 책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갔다.  

 신비화, 욕망 해소의 길

만약 금서의 내용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양대 사학과 김현식 교수는 「금서의 욕망, 해금의 욕망」에서 인간의 내면에서 금서의 내용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해금의 욕망’이라고 명명했다. 해금의 욕망은 시간이 지난 뒤 금서에서 해제되는 해금을 통해 풀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금이 이뤄지지 않아 호기심만 더 커질 뿐이다. 이런 욕망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결국에는 금서를 신비화시키면서 내용의 무지를 정당화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의 해금의 욕망이 해소되지 않을 때 금서의 신비화가 나타나게 된다.

금서와 신비주의의 연결담론은 여러 작품들에서 나타난다. 앞에서 인용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학생들의 출입이 금지돼있는 제한구역의 서적들은 ‘해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이거나 ‘희미한 속삭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로 가득 차 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역시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말을 모아놔 금서로 지정된 「유다복음」을 바탕으로, 성배와 막달라 마리아 등 과거에 숨겨지고 신비화됐던 사실들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 정치, 사상,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고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정보가 공유되는 현대사회에서 금서는 더이상 무의미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신비화된 채 존재하는 ‘금서’들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슈화하고 있는 천안함 사건은 그 원인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돼있지 않다. 이처럼 국가나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1급 정보들은 언론에서도 그 사실을 숨겨 ‘금서화’한다. 이렇게 금서화된 정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호기심은 근거 없이 신비화된 소문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금서라는 과거 권위주의적인 지배수단을 되살리는 현 시점의 ‘금서화’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임우석 기자 highbiz@yonsei.ac.kr
그림 김진목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