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도 같은 중독의 매력, 랜덤마케팅

매점에서 스티커가 들어있는 빵을 산 연돌이. 봉지를 뜯으며 생각한다. ‘이번에는 제발 새로운 스티커이길!’ 하지만 또 같은 스티커가 나왔다. 10번째 같은 캐릭터만 나온 연돌이는 좌절대신 다음번을 기대한다. 이런 기대 심리를 이용해 구매를 유도하는 데서 ‘랜덤마케팅’을 찾을 수 있다. 랜덤마케팅은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증대시키는 마케팅 기법을 가리킨다.

 

 

랜덤마케팅 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본의 후쿠부쿠로다. 후쿠부쿠로는 신년을 맞아 각기 다른 상품이 담겨있는 빨간 복주머니나 가방을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 또는 그 복주머니나 가방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복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 채 구입하게 되는데, 이 때 나오는 상품을 통해 그 해의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을 위한 이벤트를 제공함과 동시에 재고를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랜덤마케팅이 활성화된 또 다른 사례로는 캡슐자판기가 있다. 캡슐자판기는 여러 가지 캐릭터나 소품들을 캡슐에 넣어 놓아 소비자가 자판기를 통해 이를 뽑을 수 있는데, 이 역시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 자판기에 다양한 종류의 캡슐 시리즈가 들어가 있어 이를 모아 일종의 컬렉션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뽑고자 하는 특정 상품이 있더라도 마음대로 뽑을 수 없다는 점에서 캡슐자판기 역시 랜덤마케팅이다.

운의 작용과 결과물의 불확실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랜덤마케팅의 사행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캡슐자판기의 경우 한 캡슐의 비율을 임의로 조정해 거의 나오지 않게 한다면, 컬렉션을 모으는 사람들은 비율이 낮은 캡슐을 뽑으려고 계속해서 뽑기를 하게 된다. 따라서 사행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캡슐자판기의 유통을 맡고 있는 (주)티아츠코리아의 김은숙 주임은 “계속 같은 것을 뽑아 화가 난 사람에게 항의전화가 올 때도 있는데, 캡슐들은 동일한 비율로 들어가 있다”며 “랜덤이기 때문에 무엇이 나올지는 공급자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도박에 비유될 만큼 매혹적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랜덤마케팅이지만,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랜덤마케팅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협소한 시장 때문이다. 캡슐자판기를 예로 들면, 일본의 경우 수요가 다양한 연령층에 퍼져있는데다 마니아층도 두텁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들만 캡슐자판기를 이용하고 있다. 김 주임 역시 “소비자의 심리를 마케팅 기법으로 자극하려 했기다보다는 저렴한 인건비로 유통비용을 최소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며 우리나라에 캡슐자판기를 들여온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랜덤마케팅이 잘 사용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는 학문적인 논의가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후쿠부쿠로나 캡슐자판기 등 랜덤마케팅이 실생활에 성공적으로 접목된 사례가 많기 때문에 랜덤마케팅이 활성화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례도 없고 학문적인 검증도 없기 때문에 랜덤마케팅이라는 모험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지만 시장이 협소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랜덤마케팅, 도박과 마케팅 사이에서 랜덤이란 요소를 적용해 얼마나 소비자들을 이끌 수 있을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임우석 기자 highbiz@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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