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독서가 3인 인터뷰]

정신없었던 3월도 가고 중간고사를 치고 나니 4월도 다 지났다. 예년 같으면 꽃들이 흐드러질 시기지만 올 봄은 유난히도 춥다. 어쩌면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책을 읽기엔 좋은 환경인지도 모른다. 왠지 마음이 들떠 책 읽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면? 당신의 독서욕에 불을 지펴줄 매력적인 독서가 3명을 소개한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으리”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등 책읽기에 관한 책만 다섯 권 째인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서평, 강연, 독서운동 등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 독서가다. 한때 서평전문잡지 「출판저널」 편집장까지 지냈지만 더 많이 읽고 싶어 그만뒀다. 현재는 안양대에서 독서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다 고개를 들었을 때 창으로 들어오는 석양빛을 통해 ‘고즈넉하다’는 말의 의미를 배웠다는 이 평론가는 홀로 독서가이고 싶지 않다. 대중들에게 독서의 가치를 전파하고자 한다.

 

 

Q. 얼마나, 어떻게 읽나?
A. ‘죽도록 열심히’ 읽는다. 다른 독서가들과 비교될까봐 권수는 밝히지 않는다. (웃음) 여러 권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다. 가방 속, 침대 옆, 서재, 화장실 등 공간에 따라 각각 다른 책을 두고 있다. 헷갈리진 않는다. 화장실엔 만화책, 서재엔 철학서, 이런 식으로 공간 특성에 따라 난이도가 다른 책을 두기 때문에 섞일 염려는 없다. 이렇게 읽는 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Q. 책을 읽게 된 계기는?
A. 결핍감이 무언가를 추구하게 하지 않나. 내 안에 결핍된 게 있다고 느끼면 답을 찾게 된다. 나 같은 경우 가정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해 친구들이 떠나는 모습을 몰래 지켜봐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 물질적 결핍감, 전망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갈 지혜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 집에 책이 많았던 건 아닌데 집에 돌아가도 아무도 없으니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도서관도 장서가 충분히 갖춰져 있던 편은 아니라서 나름대로 읽었다해도 양적으로 많은 건 아니었다. 본격적인 독서는 대학에 가서 시작됐다. 시대적 배경 역시 독서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모든 언론매체들이 거짓을 말하는 시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권이 그 점에선 대학생들에게 좋은 일을 한 것 같다. (웃음)
Q. 책읽기가 직업인 셈인데 그 때문에 독서가 힘겹게 느껴질 때는 없나?
A. 내게 책읽기는 정말 행복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주류적인 요소라고는 전혀 없는 나를 책 많이 읽은 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불러준다. 최근엔 책 집필 과정에서 과학자들과 친해지기도 했는데, 책 때문에 사람들과 사귐도 있다. 특히 독서는 할수록 소모 당하는 게 아니라 축적된다. 일을 할수록 내 안에 쌓이는 게 많아지고 점점 더 잘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다. 책 때문에 내가 귀해지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나.

정혜윤 CBS PD, “독서는 내게 가장 자극적인 일”

정혜윤 CBS PD의 본업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가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보다 독서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도서칼럼으로 유명해졌고 이를 엮은 『침대와 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 책에서 이런 걸 느껴도 되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그의 글은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책읽기를 바탕으로 한다. 책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을 따라하고 남자주인공과는 사랑에 빠지며 책에 나오는 음식을 찾아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즐긴다. 최근에는 고전 읽기에 관한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냈다.

 

 

Q. 얼마나, 어떻게 읽나?
A. 한 주에 몇 권, 이런 식으로 정해놓고 읽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한 권을 잡고 끝까지 다 읽는 게 아니라 이 책을 읽다가 의심나는 구절이 있거나 떠오르는 다른 책이 있으면 그리로 넘어가는 식이라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항상 주변에 책이 있다. 침대 옆에도 쌓여 있고 사무실 책상 근처에도 쌓여 있는데, 틈틈이 읽는다. 가방에도 항상 책이 있다. 20년 간 매일매일 책이 있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Q. 지금 가방에 든 책은?
A. 단테의 『신곡』이다. 천안함 영결식을 보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앳된 장병들의 사진을 보고 그 아이들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곡』의 「천국」편을 읽고 있다.
Q. 대학 때의 책읽기에 대해서 말해 달라.
A.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나는 연예인들에게 관심 없는 것만 빼면 평범한 모범생이었고 가리지 않고 독서했다.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를 독파하며 터키의 술탄에 반해 이국적인 풍경을 동경하기도 하고, 『북해의 별』같은 만화책을 읽다 역사에 관심이 생겨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빠지기도 하고, 진정한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댈러웨이 부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 『보바리 부인』 부인 시리즈를 사 보기도 했다. 대학에 와서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게 됐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읽고 책은 무기란 걸 알게 됐다. 책을 통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거다.
Q. 독서의 매력은?
A. 내게 독서는 가장 자극적인 경험이다. 나의 경계를 밖으로 계속해서 밀어내 준다. 세상이 확장되는 거다. 그래서 지금의 나보다 1년 뒤의 내가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명섭 기자, “금욕적 독서, 절제하는 독서”

「한겨레」의 책·지성팀장 고명섭 기자는 매주 인문·과학서 중에서도 두께만으로도 기가 죽는 책들만 골라 독파하는 출판·책 전문기자로, 그 정수를 정갈하게 정리해 서평으로 뽑아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해왔다고 하는 많은 독서가들과 달리 대학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소금쟁이가 수면을 치듯 속독해야 하는 기자 일의 특성상 진지한 독서는 숙명적으로 맞지 않지만 그래서 더 치열하게 읽고자 한다.

 

Q. 대학 때의 독서체험?
A. 대학에 들어와 내가 너무 무식하단 걸 깨닫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똑똑해 보이는 선배들을 닮고 싶기도 했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맘도 없지 않았다. 사소한 계기였다.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단 생각에 게걸스럽게 허겁지겁 읽었다. 1년에 100권 같은 식으로 목표를 세워 읽어치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3년 쯤 읽고 나니 내가 지식의 뒤꽁무니만 쫓고 있단 걸 알았다. 이렇게 읽어서는 책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부터 양에 연연하지 않고 체계와 계통을 밟아 읽어나가자고 결심했다. 내 독서체험에서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독서에 절제와 금욕주의가 필요하단 걸 깨달은 거다. 1년에 100권을 읽는 것보다, 물론 그렇게 읽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고전 10권을 제대로 읽는 게 훨씬 좋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Q. 다독이 좋은 독서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A. 다독에 대해 의심하는 편이다. 내게 책읽기는 ‘공부’다.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을 얻기 위한 책을 선승이 수도하는 자세로 최대한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존재를 걸고 책과 대결한다는 심정으로 하는 독서에서는 다독이 불가능하다. 이런 공부는 대상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관점으로 인식하는 힘을 갖게 된다. 삶에 여러 층위가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는 거다.
Q. 공부가 아닌 독서는 의미가 없나.
A. 재밌어서, 읽는 게 즐거워서 하는 독서는 유희적 책읽기다. 어떻게 늘 빡빡하게만 읽을 수 있겠나. 쉴 때는 유희적 책읽기를 하기도 하고 유희적 영화보기를 하기도 한다. (웃음) 하지만 독서의 중심이 유희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Q. 공부로서 독서를 하려면 책 읽기가 즐겁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A. 그렇다. 저명한 문학평론가였던 고(古) 김현 교수가 살아 있을 때는 『책읽기의 괴로움』이란 책을 냈는데 작고한 뒤에 나온 유고집의 제목은 『행복한 책읽기』였다. 이처럼 읽는 과정은 힘들고 괴롭지만 끝내 행복해지는 게 책읽기가 아닌가 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의미에서 독서를 말하는 사람은 이 평론가다. 대중들에게 글로써 책에 대한 정보, 독서의 매력과 가치를 알리는 게 직업인 탓이기도 하다. 정 PD에게 독서는 좀 더 감각적인 행위다. 책 속의 주인공, 풍경, 사물, 지식들 속으로 뛰어들어 자유분방하게 뒤섞이는 과정이다. 고 기자는 두 독서가보다 엄격하고 절제된 태도로 책을 대한다. 책은 세계의 본질과 스스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줄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실용서는 철학서라고 믿는다. 똑같이 ‘독서’라 부르는 행위지만 이에 대한 표상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 독서를 말하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양 행복해보였다. 이 평론가는 말이 많아졌고 정 PD는 한층 유쾌해졌으며 고 기자는 종종 말에 힘이 실렸다. 이들을 그토록 행복하게 한다는 ‘독서’가 내게는 어떤 행위인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자료사진 이권우, 정혜윤, 고명섭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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