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감싸안는 따뜻한 손, 함세웅 신부를 만나다

“우리가 죽음을 수락할 때, 죽음은 그 자체의 모습을 벗는다. 죽음은 희망이 되고 불빛이 된다. 그것이 부활이다.” 민주화 운동에서의 희생을 묻는 질문에 함세웅 신부는 부활을 말했다. 부활은 육체의 환생이 아닌 가치와의 만남이다. 역사 속에서 민주화 운동의 희생은 실패가 아니고, 정의는 꿈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은 그렇게 사회 속에 끊임없이 부활했다. 희생이 희망이 되고 불빛이 되어준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함 신부 뿐 아니라 모두에게 민주화 운동은 매몰될 수 없는 역사이자 현실이다.

함 신부는 한국 민주화 운동을 살아낸 인물이다. 지난 1974년 함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아래 사제단)을 발족했다. 그는 유신 체제 하에 두 번 투옥됐고 수감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저격소식을 들었다. 함 신부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2010년은 이른바 꺾어지는 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4.19 민주혁명 50주년, 5.18 민주항쟁 30주년, 경술국치 100년, 전태일 산화 40주년 등 2010년은 민주화 운동에 기적과도 같은 해다. 2010년 민주화 정신 계승의 해를 맞아 함 신부는 다시 초심, 성찰, 참여를 말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서 학생 참여는 높았습니다. 현재는 극명히 낮은 듯합니다. 정치 참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학적으로, 참여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존재입니다. 우리의 언어 사고는 그 자체로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정치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때문에 정치 참여란 표현은 잘못된 개념입니다. 현재 학생들이 정치 ‘참여’를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 독재 정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긴 언어의 잔재인 듯합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우리는 엄밀히 말해 해방하지 못했습니다. 미군정 3년의 지배로 옮겨간 것뿐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 전두환 신군부 독재 역시 유월항쟁으로도 깨끗이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잔재를 청산치 못한 것은 우리 민족사의 얼룩이고 원죄입니다.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이 잔재에 대해 우리는 아직 역사적 정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에 저는 학생 정신을 말하고 싶습니다. 일제시대와 7,80년대에 민족의 동력은 학생정신이었습니다. 현재는 사장된 학생정신이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변화의 물결은 거셌고, 막으려는 힘은 적었습니다. 동아일보 주필이었고 한겨레 초대 사장이신 손권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학생운동은 바로 독립운동사다. 민주주의 혁명, 인권의 역사, 통일의 역사는 바로 학생운동사이다.” 오늘날 학생들이 되새겨야 할 가치입니다. 학생들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어두운 상징입니다.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깨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것은 연세의 교육이념과도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나보다 억울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지성인의 의무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작은 광주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광주가 인정받는 것에도 7년이 걸렸듯, 잊혀진 작은 광주는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약한 분들에 눈길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성찰입니다.
 
-촛불집회에서 대학생 참여는 적었습니다. 대학생으로서 면목이 없다고 봅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촛불집회는 시대의 요구였다고 봅니다. 대학생들이 뒤따른 모양이라고 해서 저는 부정적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시대의 문제를 감지하고 나섰다면 그들은 우리의 희망이 됩니다. 단지 대학생들 자신이 면목이 없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살아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가 되면 학생들 힘이 모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려면 분명한 정치관을 가지고, 언론을 식별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언론을 식별할 때 참고할 것이 신학자 슐라이어 마흐의 해석학 논리 입니다. 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객관적 사실과 그 사실을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이는 주관적 해석이 종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의를 가지고 왜곡하려는 언론은 이 객관적 사실 자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시대에서 가장 먼저 진위를 판별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올바른 언론관이 필요합니다. 2010년이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제단은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사회에 대한 종교인의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앙인은 100% 신앙인이자 동시에 100% 시민입니다. 시민이 민족과 정치 현실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의무입니다. 지난 1974년 많은 시민들과 함께 원주 교구의 지학선 주교께서 납치 구속 되셨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사제들이 모여 주교마저 구속하는 정치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관계자의 석방만을 원한다면 이기적일 것입니다. 학생, 시민, 모두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사제단을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은 정의입니다. 사랑 역시 정의와 하나인 실체입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없고, 사랑 없는 정의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신 정권의 불법성을 고발하고 언론 자유를 외치고 인권 운동을 펼치는 것은 그런 정의를 구현하고자 함입니다. 종교와 사회는 함수관계입니다. 사회가 정화된 만큼, 종교도 정화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스스로 쇄신하고 반성하고자 합니다. 지금 사제단은 4대강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사장실에서 함 신부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사제복은 소박했다. 함 신부는 인터뷰 내내 그런 사제복을 여몄다. 예순이 넘은 그는 노구의 몸이 춥다고 했다.

함 신부는 말할 때 열정적이었고 들을 때 경청했다. 그는 연세대학교의 소식을 들을 때 학생들의 삶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는 학생의 참여를 물었고, 참여가 적막함을 답으로 받았으나 그 적막을 비판하지 않았다.

함 신부는 끝없이 생각할 것과 과거를 잊지 말 것을 주문했다. 청산해야 할 것들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시대 속에 공존했으나 그 차이는 컸다. 청산해야 할 것들은 역사와 사회 속에 깊이 뿌리박혔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역사와 기억 속에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4·19가 잊혀져갔고 5·18이 희미해져갔다. 함 신부가 느끼는 추위는 오직 나이 때문은 아닌 듯했다. 시대는 매섭게 몰아쳤다. 효율과 지배의 일방적인 흐름은 오늘날에도 이어졌고, 함 신부는 흐름에 맞섰다. 몰아치는 흐름은 누구에게나 감당키 어려웠지만 함 신부는 계속해서 깨어나는 정신을 말했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그는 악수를 건넸다. 손은 잠시나마 따뜻했고 거칠지 않았다. 여태껏 만난 정치인들은 억센 악수를 좋아했다. 정치인들은 손이 단단했고 그 속의 강한 힘을 드러냈다. 함 신부는 부드러운 손으로 악수했다. 그 악수는 소박했고 여운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구하십시오. 모든 것이 덤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함 신부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의 마지막 대목을 말했다.

글 김동현 기자 dh7000cc@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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