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기는 본질적으로 성가신 것” 진지한 장난끼의 김연수 작가를 만나다

‘이렇게 사실적인 개소리가 있나’ 오해하지 마시길. 작가 김연수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업』을 보고 쓴 「씨네21」 칼럼의 제목이다. 영화에 개의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변환시켜주는 기계가 나오는데,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 애니메이션이 예전에 비해 사실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오랜 고향 친구이자 마찬가지로 소설가인 김중혁과 번갈아 가며 쓰는 고정칼럼 ‘나의 친구 그의 영화’에서 김 작가는 영화를 소재로 시시껄렁한 농담과 사회와 예술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오가며 그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의 친구 그의 영화’는 지난 2월 두 김 작가의 재담을 즐기던 많은 독자들의 아쉬움 속에 1년 만에 연재를 마쳤다.

이렇게 웃긴 소설가가 있나

그러나 칼럼을 통해 김연수 작가를 접하고 그의 소설을 집어든 독자들은 조금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주제는 진지하더라도 언제 농담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시종일관 장난스런 분위기가 감돌던 칼럼과는 달리 김 작가의 소설은 쉽지 않다.

“그 칼럼은 김중혁과 얘기하는 거라 도저히 진지해질 수가 없더라고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장난처럼 입을 뗐지만 김 작가의 소설과 수필이 다른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소설관’에 있다. 그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성가신 것이다. 그는 그 성가시고 지난한 과정을 견뎌낸 후에야  소설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읽으려면 며칠 밤을 책과 씨름해야 해요. 정말 지루한 작업이죠. 마치 그 인물의 생을 함께 살아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한 인간의 삶을 관통한 듯한 감동이 있어요.” 그는 이렇게 읽을 때 비로소 소설을 한 권 끝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반면 수필은 크로키에 가깝다. 특징적인 몇 가지를 골라내 수다 떨 듯 가벼운 필치로 쓰는 것이다. “소설 쓰듯 수필을 쓸 순 없잖아요? 수필 쓰듯 소설을 쓸 순 있겠지만 그건 제가 쓰고자 하는 소설은 아니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문장 길고 행갈이도 잘 안 하고 묘사만 이어지고, 읽기 성가시긴 해요.” 그러나 그는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좋은 문학작품일 수 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이해란 언어의 형식을 취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를 넘어선 소통이기 때문이다. “상을 당한 친구를 찾아가서 아무 말 없이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게 이해 아닐까요. 행동으로 드러나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텔레파시 같은 거요.” 아무리 가독성이 떨어져도 언어적인 차원의 성가심과는 무관히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독자들도 많다. 실제로 지난 해 9월 출간된 그의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현재까지 출판사 집계로 4만 3천부를 찍었다. 문학서로서는 상당한 판매고다.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이렇듯 ‘읽기 성가신’ 소설을 쓰지만, 김연수 작가는 괴롭게 글을 쓰는 타입이 아니다. 고통스럽게 영감을 얻어 쓰기보다 계획을 세워 매일 조금씩 차근차근 쓰고 다시 고치는 식이다. “그리고 다 쓰면 놀고요.”

그는 글을 쓰면 반드시 즐거워진다고 말한다. 자기가 얼마나 한심한지에 대해 쓰더라도 매일 일정한 분량을, 다 썼다 싶은 데서 좀 더 써서 완전히 토해놓고 나면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문학은 괴로운 거다, 가난하고 힘든 거다, 이런 이미지가 있어요. 이 사람들은 깊이 들어간다는 게 절망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매일 일과처럼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는 건데.” 그에게 글쓰기의 결과물로 생기는 소설은 반드시 ‘성가시게’ 읽어야 하는 무겁고 육중한 것이지만,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는 즐거워야 한다고 믿는다. 하루하루 밟아가되 그날 분을 마치면 툭 털고 쉴 수 있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런 성향이에요. 되도록 즐겁게 살려고 해요.”

 

 

‘되도록 즐겁게’는 정말 그의 천성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도 방황하고 휘청이기 쉬운 대학시절에도 그는 진로나 미래에 대해 큰 걱정은 없었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기보다는 아무 생각이 없었죠. 저는 제가 서른 살 넘어까지 살 줄 몰랐어요. 대충 알바하며 살아야지 했죠. 결혼할 거라고도 생각 안했고 직업이 필요하리라는 것도 이해 못했어요.” 무엇보다도 주변 글 쓰던 선배들을 보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쓰기만 하면 글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굶주린 사람처럼 시를 쓰고 책만 읽었다. “그때 대학교가 참 좋았죠. 그러고도 졸업이 됐으니.”

청춘은 원래 불안하고 초조한 것

“스무 살 때라. 떠올리자니 전생 같네요.” 턱을 괴고 20대 시절을 떠올리던 그는 젊은 시기의 불안에 대해 조언한다. “그 무렵엔 그런 게 있죠. 당장이라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빨리 어떤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은 불안감. 하지만 청춘은 원래 불안하고 초조한 거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거고 세월이 지나기 전에는 어떤 사람도 되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그리고선 그렇게 불안에 몸이 달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기가 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고 덧붙인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가 결정하는 게 중요하겠죠.”

20대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묻자 연애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 시기처럼 예민하게 모든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경험에 투자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 경험의 극한이 연애다. “공부는 나중에 다시 해도 돼요. 근데 그게 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몇 년만 지나면 금방 까먹더라고요. 하지만 연애는 까먹지 않아요.” 『여행할 권리』라는 여행 수필집를 낸 적도 있는 그지만 여행에 대해서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더라는 것이다. 유럽은 맥주, 포도주가 싸다는 것 말곤 좋은 게 없다며 능청스레 말한다. “대학생들, 여행 가지마세요, 가봤자 별 거 없어요. 이렇게 적어 주세요.” 하지만 사막 여행은 강력 추천한다. “세계의 끝까지 간 기분이었어요.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더라구요.” 여행지에서의 언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는 너무나 그다운 대답을 한다. “근데 그게, 말 못해도 다 통해요. 한국말로 하면 다 알아들어요.” 비언어적인 데 소통의 본질이 있다고 믿는 그답다.

평단이 편애하고 시대가 사랑하는 소설가

한동안 김 작가가 책 칼럼을 연재했던 월간지 「브뤼트」는 저자이력란에 김연수를 이렇게 소개했다.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까지 평단이 편애하고 시대가 사랑하는 소설가. 그 외에도 음악평론과 잘 빠진 칼럼, 완성도 높은 번역도 하고 있다.” 짧지만 작가 김연수의 이력과 강점을 빠짐없이 드러내는 문장이다. 몇 문장만 더하자. 매일 일과처럼 글쓰기를 마주 대하는 성실함과 그렇게 차근차근 써나가면 천재적인 영감이 아니라도 좋은 문학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 낙천성. 그게, 읽기 쉽지 않은 소설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사진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