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고려대 김예슬씨의 대학 거부 선언을 보며

문자 그대로 ‘생지옥’을 뚫고 백양로에 발을 들인 새 동무들을 환영한다. 설렘과 떨림으로 캠퍼스와 신촌 곳곳을 누빌 동무들을 생각하니 나까지도 신이 난다. 우리, 학번 ? 나이를 물어 위-아래를 따져대는 까탈은 그만두자.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모두가 다 같은 ‘배움의 벗(학우)’이다. 동무이다. 이것이 “아, 됐고! 일단 대학에만 가”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던, 바로 그 ‘대학문화’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영원한 맞수’ 운운하며 내내 으르렁댈 안암골 모 대학의 학생이 얼마 전 자발적 퇴교 선언, 대학 거부 선언을 해 화제가 됐다. ‘선언’이라지만, 달랑 석장의 자필 대자보였다. 촌스럽지만 그 파급은 엄청났다. 3월, 백양로의 공기가 어떤지는 나도 모르는 바 아니다. 교정을 뒤덮은 꽃들이 여러분의 마음마저 점령했으리라. 허나, 그 들뜸과 설렘의 와중에도 이 선언이 던진 물음만큼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 물음 안에 여러분의 미래가 있다.

  김예슬씨의 선언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학, 대학생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화두이다. ‘대학 입학’을 목표로 모든 걸 유예한 채 입시전쟁에 참전했건만, ‘취업’이란 관문 앞에 또다시 꿈을 유보해야만 하는 현실. 이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나 꿈꾸기를 꿈꾸지 끝내 꿈을 살지는 못한다. 강의도, 강의 밖 생활도 오로지 취업에만 영점 조준 되어있다. 그 외의 곁눈질은 ‘잉여’들이나 하는 짓이다. ‘대학 졸업’이 단지 이력서의 학력을 한 줄 더 늘려주는 정도라면, 대학생(大學生)으로서 대학(大學)을 다닌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나는 김예슬씨와는 달리, 알량한 졸업장 하나를 건지려고 4년 6개월의 시간을 악착같이 버텼다. 굳이 유난을 떨며 이중전공도 이수했고, 연애도 나름 끈덕지게 했으며, 학회나 학생회, 학외단체 활동도 부지런히 했다. 나는 대학 내내 열심히만 살면, 졸업 후에 버젓한 ‘무언가’가 돼 있을 줄 알았다.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나는 어쩐지 유명대학을 나오지 못한, 비상경계열 출신의 ‘루저’가 돼있었다. ‘위너’가 되고픈 욕심은 없었지만 적잖이 씁쓸했다. 천만다행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 빚쟁이 신세는 면했다.

  진심으로 여러분의 앞날이 장밋빛이길 바라지만, 분명 순탄치 않을 것이다. 이건 으름장도 엄살도 아닌, 그냥 현실이다. 구태여 청년실업률과 같은 경제지표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도리어 현실은 숫자보다 잔인하다. 이 현실 속에서 누구나 “나는 아니겠지”하며 ‘예외’가 되고픈 맹랑한 희망을 품지만, 언제나 ‘예외’야말로 ‘예외’적이다.

  그러니 다들 ‘안정’만을 좇아 10차선 탄탄대로로 뛰어드는 게다. 분명 10차선 대로였는데 너나없이 달려드니 숨 막힐 듯 치열하다. 그 길 끝에 무슨 반전이 기다릴지는 생각도 않고, 그저 뒤쳐질까만 걱정하고 달린다. 이제는 그 길마저도 “금융공황”과 “경기악화”를 겪으며 위태롭다 한다. “혼돈이 곧 일상”인 시대,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명문대’ ‘유망학과’ 재학생의 자발적 퇴교 선언은 “이렇게는, 더는 못 살겠다”고 하는 이 시대 청춘의 비명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뒤를 따라 자발적 퇴교 ‘드립’을 감행하는 베르테르가 될 필요는 없다. 학내에도 할 일은 있고, 대안을 모색할 기회도 있다. 지금은 그저 이 사건을 이 시대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화두를 던질 기회로 삼으면 족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답 없는 물음이지만 지칠 때까지 한 번 되물어보라. 이제 ‘대학생’은 되었으니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을 때이다. 그 물음 안에서, 부디 원 없이 실패하고 기약 없이 방황할 수 있길 바란다. 인간은 늘 노력하는 한 방황하고, 방황 속에서만 길을 발견한다. 궁금하지 않은가, 10차선 도로가 아닌 오솔길에는 또 어떤 삶이 도사리고 있을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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