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록, 1980년대의 민중운동 그리고 2010년의 우리들

 

 

당신은 ‘록(Rock)’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국민 할머니’ 김태원씨처럼 긴 머리를 휘날리며 헤드뱅잉을 하는 록커를 떠올릴 것이고, 록페스티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무대 위 밴드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하나된 관중들 속에서 느꼈던 뜨거움을 기억해낼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1960년대 서양에서의 록음악은 당시 청년들에게 신나는 음악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사회변혁의 무기, 록

영국의 록 비평가 사이먼 프리스에 따르면 1960년대 들어 반역적인 젊은이들은 자의식을 갖게 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주장을 펴게 됐다. 그들은 그들만의 미디어와 표현형식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1960년대 말은 민권운동, 반전운동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록 뮤지션들이 당시 젊은이들의 폭발적 정서를 사운드로 담아내려고 노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록의 중요한 특성인 ‘사회성’이다. 록은 연주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1960년대의 록은 사회 한가운데에 있었다. 젊은이들의 가장 큰 관심은 사회변혁이었고 록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사회의 움직임과 또래 젊은이들의 동향에서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의식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 가수들도 적지 않았고 음악을 사회변혁의 무기로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밥 딜런으로 대변되는 프로테스트 포크*는 노래를 사회변혁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고 노래를 통해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흐름을 형성했다.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말하는 그의 음악은 그 어떤 연설보다 강한 힘을 줘, 저항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기도 했다. 이렇듯 밥 딜런에 의해 대중음악은 단순한 반항이 아닌 체제에 대한 반항까지 담아낼 수 있었다.

1960년대, 그 후

1960년대는 또한 페스티벌의 시대였다.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 음악이 미국에 물밀듯 밀려들어왔던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 이후 록은 미국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 자연스레 페스티벌의 중심도 록페스티벌로 변해갔다. 록페스티벌은 당시 시대를 대표한 음악이자 청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던 록의 모든 것이 드러난 축제의 장이었다. 그 중에서도 1967년의 몬테레이 페스티벌과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1960년대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다.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켰던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

 

우리나라의 1980년대는 미국의 1960년대와 매우 흡사했다. 두 시대 모두 세상을 바꾸려는 대중의 열정이 집단적인 실천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민중운동의 ‘문화운동’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예를 들어 ‘민중문화운동협의회’나 노래패 ‘새벽’ 등의 문화집단들은 그들 내부적으로는 전문화를 꾀하면서도, 동시에 기존에 있던 엘리트주의적 특성을 버리고 보다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나갔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문화운동들은 서양의 록처럼 생활문화 운동의 모습을 가지게 됐다.

196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 1980년대 우리네 젊은이들에게서 볼 수 있던 ‘표출’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이자 문화평론가인 서동진씨에 따르면 이 시대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거대 자본의 논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스펙’을 관리하며 무비판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오는 26일 열릴 ‘신촌 록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는 기획단장 이강희(신방·08)씨는 “신촌에는 기업체나 프랜차이즈 사업체가 너무 많고 몇 번 이뤄졌던 기존의 록페스티벌도 상업적이라는 평이 많았다”며 “이번에는 대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대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전했다. 모두 똑같은 ‘스펙’을 갖추길 요구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현실에 순응하고 있는 우리는, 지난날의 그들보다 너무 조용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좀 더 ‘시끄러워질’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트 포크: 주로 어쿠스틱에 의존하던 포크 음악 중 선율을 통해 개혁과 선동, 비판 등의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한 갈래.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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