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

 부산에서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가 경찰에 체포된 이후, 분노한 네티즌들로 인해 관련 기사의 댓글들은 '화학적 거세','전자팔찌','사형' 등 성범죄자 처벌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어린 여학생이 피해자였던 점, 또 그 동안 성범죄자들이 그 죄목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아온 관행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어 온 것을 감안한다면,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 사건을 보면서 슬픔에 가슴이 아리고, 분노에 뜨거워지며, 또 불안에 떨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통해 요구되고 있는, 수위가 높아진 성범죄 처벌이 과연 정말로 성폭력을 뿌리뽑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는 확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성범죄의 신고율은 한 자리 수입니다. 애초에 잘 신고당하지 않는 범죄인 상황에서, 접수된 몇 퍼센트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한다고 해도, 그것이 일벌백계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사건을 아예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하나의 결과를 손대고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원인 자체를 뿌리 뽑는 것입니다. 성폭력의 원인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성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 된다는 데 있습니다. 여성의 거부나 동의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은, 여성이 끊임없이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구조의 하위에 있는 여성에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이번 여중생 살해사건과 같이 극단적이고 물리적인 성폭력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성폭력에도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폭력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뉴스에서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단적인 성폭력 사건에는 입을 모아 분노하면서도, 대학 내 공동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외모로 여성을 평가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하는 발언/행동 등 듣는 이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상적인 성적 폭력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습니다. 중도 앞에 한 여학우가 선배의 상습적인 언어 성폭력에 대해 받은 상처에 대한 자보를 붙였을 때, 그 앞에 선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게 왜 성폭력이야?' 라고 말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따금 뉴스에서 접하곤 하는 극단적, 물리적 성폭력만을 성폭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 과반공동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면서도, 극단적 성폭력 사건에 대해 뉴스에서 접하고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분노하며 가해자의 신상공개에 앞장서는 한 남학우를 보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대학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성폭력과 뉴스에 보도되곤 하는 극단적 성폭력은, 물론 결코 '같다'고 볼 순 없지만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면서, 이제는 정말 이런 일이 없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대학 공동체를 이탈하는 여학우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표면적 결과는 다르지만 그 두 성폭력의 원인은 같습니다. 그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학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성폭력에도 결코 눈 감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 대학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반성폭력 내규를 만드는 등 다양한 여성주의적 실천을 담보한다면, 일상의 성폭력을 경계하고 없애는 과정을 밟으며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에도 문제제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에 적힌 문구를 보면서 이 글의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성폭력이 더 가까이에 있다'고.  

우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08학번 김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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