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창시된 비오톱, 인간과 생물 공존의 해법 제시

어느 겨울 밤, 도로 옆길에 두꺼비 한 마리가 서 있다.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 동면 준비를 해야 하지만, 몸길이가 5cm 남짓한 두꺼비에게 보도블록을 뛰어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저 멀리서 전조등을 킨 자동차 한 대가 다가오자 두꺼비는 순간 움찔거렸다. 다행히 자동차는 지나갔지만, 두꺼비는 여전히 보도블록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수십 분을 헤매다 다행히 횡단보도에서 움푹 파여진 보도블록을 발견해 겨우 도로 너머의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인간의 공간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자연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개념이 바로 ‘비오톱’이다.

비오톱이란 무엇인가?

비오톱(Biotope)은 생물이란 뜻의 ‘bio’와 장소란 뜻의 ‘tope’의 합성어로,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비오톱은 단순히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 측정하는 단위이기도 하다. 나무 한 그루가 베이거나 풀 한 포기가 뽑힐 때 그만큼 그 공간의 비오톱 가치는 낮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비오톱 가치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일수록 더 높다. 예를 들어 숲에 있을 때와 가로수로 조성돼 있을 때 각각 나무 한 그루의 비오톱 가치는 차이가 있다. 숲에서의 나무는 곤충들과 야생 동물들의 쉼터가 될 수 있지만, 도시에서의 나무는 단순히 이산화탄소를 정화시키는 역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오톱, 어떻게 활용되나?

비오톱은 이미 100여 년 전 독일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현재 독일에서는 이를 활용한 여러 가지 사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980년대에는 학교 안의 인위적인 잔디를 모두 제거하고 자연스럽게 풀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학교숲 운동(School Forest Movement)’을 벌였다. 그 결과 잔디 위에서는 살지 않았던 곤충들과 동물들이 풀숲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공적인 잔디에서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풀숲에서 더 높은 비오톱 가치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또다른 비오톱 조성사업으로 지붕녹화사업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산화탄소 감소를 목적으로 고층빌딩에만 시행하고 있는 옥상녹화사업과는 달리, 지붕녹화사업은 비오톱 보존을 목적으로 높이와 관계없이 모든 건물에 시행되고 있다. 이미 비오톱이 조성돼 있는 공간에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 비오톱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이 손실분의 비오톱을 새로 지어지는 건물의 지붕에 조성함으로써 큰 차원의 비오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주가 비오톱 연구의 선구지로 손꼽히고 있다. 그 외 5~6개의 도시에서 비오톱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비오톱 지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지도로 만들어진 지역도 도시의 일부분으로 한정돼 있고 자료도 워낙 부실해 비오톱 지도 자료가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무춘 교수(보과대·환경공학)에 따르면 원주의 경우 현재 모든 지역의 비오톱이 지도로 만들어져, 약 2년의 기간을 거쳐 데이터베이스 구축만 이뤄진다면 당장 비오톱 지도를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연구가 진행돼 있다고 한다. 이런 비오톱 지도는 토지용도변경에 대한 심사를 할 때 기준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토지용도변경 신청을 한 토지의 비오톱 가치가 낮다면 변경을 허가해 인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비오톱 가치가 높다면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변경을 불허하는 것이다.

비오톱, 당면한 과제는?

우리나라에서 비오톱이 활용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제도의 확충 △기술의 발달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그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비오톱 지도는 토지개발을 할 때 그것에 대한 심사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기껏 만들어 놓은 비오톱 지도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비오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오톱에 대한 법적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비오톱 연구 또한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그 수준은 미미하다. 최근 들어서는 사람들 사이에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비오톱 연구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기술적인 조건들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되지 않으면 비오톱 연구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만다. 이 교수는 “인간은 생물과 공존할 때 생존할 수 있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패러다임에 얽매여 생물다양성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다”며 “생물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생물과 공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세상은 결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개발을 하더라도 비오톱을 이용해 자연 친화적인 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우석 기자 highbiz@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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