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연극 『엄마를 부탁해』

 

한 사람이 예고 없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후회다. 그에게 잘해준 기억보다 잘못한 기억이 더 또렷해지기 마련이다. 사라진 그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후회는 커진다. 그 중 가장 후회가 클 사람,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엄마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한다. 엄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행방불명이 되고, 4남매는 예전에 살았던 동네들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 엄마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과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엄마가 돌아온다면, 지금 내 곁에 있다면 뭐든지 해줄 텐데….’ 하지만 연극이 끝날 때까지 엄마는 그들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미안허다.” 엄마는 큰 아들 형철에 보내는 편지를 언제나 미안하다는 말로 끝맺는다. 이에 작은 딸 지헌은 엄마에게 “뭐가 그렇게 항상 미안하냐”고 타박한다. 엄마는 큰 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들에게도 “내가 해준 게 없다, 너희를 볼 면목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엄마의 이런 모습에 10대부터 60대까지를 어우르는 연령층으로 구성된 관객석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평생을 걸려서도 보답하기 어려울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은 그의 끝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내처럼은 살지 말어.” 서울에 가고 싶다는 지헌을 엄마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나는 못 배워 이렇게 살지만 내 딸은 공부를 해야 한다’며 남편과 고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의 형철네로 지헌을 보낸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런 욕심에 엄마는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엄마의 잔소리에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은 ‘내 인생인데 엄마가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지만 자기가 바로 엄마의 이상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지헌도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이 지난 후에야 엄마가 자신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헌은 이를 이제까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오열한다.

“나는 괜찮어야.” 연극 속의 엄마는 자신이 아무리 아파도 자식들의 걱정만 한다. 두통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쓰러지다가도 자식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 벌떡 일어나는 엄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자식들에게 ‘돌봐주는 사람’이었다. 항상 걱정해주고 보살펴주었지만 당신 자신이 보살핌을 받는 일은 없었다. 어리다는 핑계로 엄마의 내리사랑만을 받고 자랐던 자식들은 20대, 30대가 되어도 엄마 앞에서는 언제나 어렸다. 엄마가 괜찮다고 말하면 곧이 믿고 자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 자식들이다. 형철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지헌에게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엄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이에 엄마는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냐, 니가 더 걱정이지”라고 대답한다. 형철은 이 말에 금방 마음을 놓고 엄마의 병을 잊는다. 엄마는 그런 자식들을 흔히 ‘희생’이라고 일컫는 모성으로 끌어안았다.

 

 

어린 지헌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 같아.” 이에 엄마는 “시상에 첨부터 엄마인 사람이 어딨다냐”며 웃는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만나 품에 안겨 편안해한다. 엄마도 누구에게는 자식이었다. 그녀의 엄마로부터 끝없는 사랑을 받았고, 그의 꿈이었고, 그의 희생으로 자랐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사이에 그녀의 이름과 그녀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서서히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재은 기자 jenjenna@yonsei.ac.kr
자료사진 신시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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