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냄비 활동 체험기

명동 입구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한 노숙자가 다가왔다. 그는 자선냄비 앞에 서서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1천원 지폐 한 장을 꺼내 자선냄비에 넣었다. 그는 “그동안 구세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다시 나한테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깝지 않다”고 덧붙였다.

매년 12월이 되면 거리마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퍼진다. 이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아래 자선냄비 활동)을 하는 곳에서 들리는 소리다. 정겨운 종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 모금에 동참하게 한다. 그 곳에서는 적은 돈으로도 누구나 손쉽게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작은 사랑들이 모여 뜨겁게 끓고 있는 자선냄비 현장에서, 지난 2009년 12월 23~24일 이틀간 기자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해봤다.  

기부하는 자의 아름다운 얼굴

23일 낮 12시. 구세군 사관생도 최송학(32)씨가 명동 우리은행 앞에 구세군 자선냄비와 마이크를 설치했다. 기자도 빨간 자원봉사자 옷을 입고 함께 종을 흔들 준비를 했다. 최씨는 “오늘따라 주변의 스피커소리가 크다”며 “다른 소리 때문에 종소리까지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경험자답게 근처 가게에 음악소리를 조금 줄여달라고 부탁한 다음 자선냄비 활동을 시작했다.

일단 종을 울리는 방법부터 배웠다. 최씨는 “팔에 힘을 빼고 그냥 종을 내리면 된다”며 “2초에 한 번씩 종을 울려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조금 하다보니 춥고 팔이 아파왔다. 새삼 구세군 사관생도의 노고가 느껴졌다. 하지만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힘이 났다.

“타인을 돕는 마음을 알게 하고파”

체험활동을 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각각 1천원씩 기부하는 가족, 손잡고 돈을 넣는 커플, 홍콩의 구세군이라며 1만원을 넣고 가는 이들 등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보탰다. 모금에 참여한 최병준(23)씨는 “살기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돈이 보람차게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손녀의 손에 돈을 들려 모금시킨 아무개(66)씨는 “손녀가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을 알게 하고 싶어 모금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한 아이가 모금을 하고 있다.

자선냄비 활동은 한 시간 활동하고 한 시간 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관생도나 자원봉사자들은 쉬는 시간에 구세군 버스에서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 1인당 5시간씩 구세군 활동을 한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 24일의 경우 1인당 6시간씩 자선냄비 활동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약 20년 동안 자선냄비 활동을 해왔다는 최씨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다른 모금활동과 달리 직접참여로 이뤄지는 활동이 많아 더욱 의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의 기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 타 모금활동에 비해, 구세군 자선냄비는 일반 시민의 모금 참여 비중이 높다는 이야기다. 최씨는 그런 모습에 반해 “자선냄비 활동이 평생을 바칠만한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함께 모여 부글부글 끓는 사랑

23일 오후 3시 30분경 어떤 할머니가 자선냄비에 다가오더니 1천원을 넣었다. 그리고는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와?”라고 물었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하자 최씨는 “매일매일 오셔서 명동에 있는 모든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으시는 할머니”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항상 내일도 오는지 물어본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주위의 노점상분들 중에도 매일 구세군 냄비를 찾아준 분이 있다”고 말했다. 자선냄비 활동 마지막 날, 최씨는 매일 자선냄비를 찾아준 시민들을 위해 드링크 몇 병을 준비했다. 그 사람들이 24일동안 버틸 수 있게 도와 준 에너지였다며.

정창영 전 총장과 우리대학교 한인철 교수(교목실 교목실·조직신학)등이 자선냄비 체험을 하고 있다.

23일에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명동 구세군을 찾았다. 낮 2시, 명동 입구에서 정창영 전 총장과 우리대학교 한인철 교수(교목실·조직신학)등이 약 30분 동안 자선냄비 활동을 했다. 정 전 총장은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며 “구세군 같은 활동이 번창해 사회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낮 4시에는 정운찬 총리가 명동 입구에 도착해 성금만 넣고 갔다. 구세군 사관생도들은 자선냄비 활동은 하지 않은 채 얼굴만 내비치고 가는 정치인들을 보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이들이 나서면 초점이 유명인에게만 맞춰지고 자선냄비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는 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뜨거웠던 24일, 그 후

24일 밤 11시 50분. 밀리오레 앞 자선냄비 활동이 종료됐다. 자선냄비 거리 모금활동은 지난 1일을 시작으로 24일까지 전국 3백여 곳에서 진행됐다. 지난 22일까지 집계한 모금액이 27억 1천2백여원으로 지난해 대비 14% 상승했고 밝혔다. 자선냄비 활동이 끝난 이후에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묻자 최씨는 “조용한 곳에서 한동안 쉬고 싶고 무엇보다도 잠을 자고 싶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미소에서 피곤함보단 뿌듯함을 엿볼 수 있었다.

허찬회 기자 ganapiti@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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