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를 위한 연극 선택 가이드

연극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연돌이는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대학로를 찾았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세순이를 기다리는데, 웬 처음 보는 사람이 공연 전단지를 쥐여 주며 따라붙는다.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인기 순위도 높은 공연이라는데 이 연극, 괜찮을까?

연극은 같은 극 장르인 영화나 같은 공연예술인 뮤지컬에 비해 초심자들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연극은 ‘난해하다’는 선입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일간지 문화면의 공연 소개 기사를 제외하면 요즘 어떤 연극이 문제작인지, 관객 반응이 좋은지 알 수 있는 손쉬운 경로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대학로를 찾았다가는 위 상황처럼 ‘삐끼’들에게 ‘낚이기’ 십상이다.

 연극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입을 모아 이런 삐끼들이 권하는 공연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대체로 가벼운 소재를 가볍게 풀어낸 상업적인 오락극들인데, 이러한 공연들이 연극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월간 『한국연극』의 김슬기 기자는 “진지하게 삶을 파고든 연극 작품은 단순한 기분전환용 볼거리를 넘어 삶의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이런 메시지를 감칠맛 나게 표현하기 위해 오락적 요소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것이 주가 된 작품이 ‘진짜 연극’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과대 연극동아리 ‘토굴’의 구윤규(신방·08)씨도 “연극은 말초적인 재미 이상의 의미를 사회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며 “상업극들이 주는 웃음이나 유희는 TV나 영화로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련 정보들은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초심자들이 오락극들을 피해 제대로 된 ‘진짜 연극’을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대학교에서 ‘공연예술비평’과 ‘연극의 이해’ 과목을 맡고 있는 학부대학 우수진 강사는 주요 극장의 기획공연을 눈여겨보라고 말한다.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아르코예술극장 등 큰 극장의 기획력은 공신력이 있으므로 각 극장의 인터넷 사이트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면 양질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 강사는 “해마다 열리는 규모 있는 연극제의 초청작들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한다. 상반기에는 서울연극제, 하반기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대표적이다. 특히 매년 10월경에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행사 기간 동안 대학로에서 다른 공연은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큰 연극제다. 김 기자는 각종 매체나 연극 관련 단체들이 연말에 ‘올해의 연극’으로 꼽은 작품들의 앵콜 공연을 권한다. 평론가들이 꼽았는지, 일반 관객들의 평도 반영됐는지 등 선정방식 및 심사위원 구성을 참고하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연극들을 만날 수 있다.

사전조사가 없더라도 극장에 가면, 혹은 TV를 켜면 입맛대로 골라 볼 수 있는 오락거리들에 비해 확실히 연극은 ‘쉽지 않다.’ 우 강사는 이런 점을 들어 “결국 연극은 적극적인 관심과 부지런한 발품이 바탕이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취미”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왕 연극을 보기로 했다면 ‘진짜 연극’을 보라고 권한다. 내 삶은 아니지만 나와 동떨어진 삶도 아닌, 무대 위의 삶. 이를 날 것 그대로 살갗으로 느껴볼 기회는 진짜 연극만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자료사진 극단 전망, 백수광부, C바이러스

 

 

극단 전망『억울한 여자』의 한 장면

 

김슬기 기자의 올 겨울 추천 연극

『억울한 여자』
극단 전망, 쓰시다 히데오 작, 고선웅 연출. 초심자들을 위한 첫 도전작으로 별 네 개 반. 적절한 재미와 웃음도 선사하면서 메시지도 있는 작품.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췄다.
2010년 1월 28일~2월 28일,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2관

『고래』
극단 백수광부, 이해성 작, 박근형 연출. 『고래』의 박근형 연출가는 각종 연극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있는 연극계의 봉준호 감독. 난해하지 않게 삶의 단면을 짚어내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2009년 12월 31일~2010년 1월 17일, 대학로 정보소극장

『뷰티퀸』
극단 C바이러스, 마틴 맥도나 작, 이현정 연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빈틈없고 날카로운 희곡으로 유명한 마틴 맥도나 작. 『스프링 어웨이크닝』, 『쓰릴 미』 등 파격적인 주제와 소재의 공연들을 선보여 온 기획사 ‘뮤지컬헤븐’의 새로운 연극 브랜드 ‘노네임씨어터 컴퍼니’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다소 엽기적일 수도 있다.
2010년 1월 14일~2월 28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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