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속 타인에 대한 시선 엿보기

지난 2006년 『올드보이』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작년에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이 25일 우리대학교를 찾았다. 그가 이토록 세계적인 감독이 된 데에는 두 작품을 포함한 ‘복수 3부작’의 공이 컸다. 그러나 박 감독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영화는 따로 있다. 바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다. 관객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음은 물론, 그마저도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던 영화지만 모든 것이 박 감독의 의도대로 잘 만들어진 영화였기 때문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인 영군(임수정 역)과 일순(정지훈 역)의 사랑이야기다. 자신이 사이보그라는 망상을 지닌 영군은 밥을 먹으면 자신이 고장난다며 기계처럼 충전만 하려 한다. 일순은 이런 상상 세계를 깨지 않으면서 그녀가 밥을 먹도록 도와준다. 이런 영화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신분석 담론을 그 해석의 기본 원리로 끌어들인 일반적인 영화들은 치료를 통해 환자를 ‘정상적’인 사회에 적응시키는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박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이런 한계를 넘어 정신분석적 해석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환자의 증상들을 질병 치료를 위한 분석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증상들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 그 증상들이 주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박진 교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영군의 사이보그 망상을 단순한 질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한 세계로 바라보고 인물의 실존적 필연성을 이해하는 시각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영군의 망상은 치료돼야 할 병적인 증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녀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라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쏠린 혹평들에 대해 “밥만 먹이는 것이 치유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정신병에 대한 오해가 숨어 있다”며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환자의 잘못된 정신을 뜯어 고쳐 옳은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위에서 말한 정신분석의 윤리적 태도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신병은 환자의 행동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삶을 심각하게 해칠 때 문제가 된다. 그때 그 행동을 수정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현실과 환상,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지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세계로의 진입을 강요하는 파시즘적 태도를 가진 의사들을 ‘하얀맨’으로 부르면서 없애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의료진의 도움이 아니라 서로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문제를 치유해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순은 엄마가 떠났다는 상실감 때문에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끝내는 ‘점’으로 소멸될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의 특성을 훔치는 ‘안티-소셜’ 즉, 반사회성 인격장애 환자다. 그러나 황씨는 일순이 안티-소셜이라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다른 이의 특성을 훔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모든 이의 특성을 한 번씩 가져봄으로써 이루는 타자와의 교감은 그들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하얀맨’들에 의해 ‘정신병자’로 진단 받는 일순이 그들보다 다른 환자들을 더 잘 이해하고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가 제시하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명제는 이 대사가 나오는 영화 속 맥락 그대로 사이보그이지만 ‘밥을 먹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제목에서는 숨겨져 있던 이 ‘밥 먹기’가 사실은 이 영화의 주제다. 일순은 영군에게 사이보그라는 망상에서 깨어나길 강요하기보다는 밥을 전기에너지로 바꿔준다는 가짜 장치를 이용해 밥을 먹게 한다. 우리도 일순처럼 누군가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밥을 먹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연 기자 periodistayeon@yonsei.ac.kr
사진 박민석 기자 ddor-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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