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속 억압당한 10대들의 성(性)

나의 삶은 낮과 밤의 두 부분으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낮에는 정직하고 용감한 태도로 자신을 무정하게 학대했지만, 밤이 되면 〔…〕 욕망의 품에 냉큼 안겨드는 내 모습에 나 자신도 놀랄 지경이었다. 그 시절 〔…〕 나는 내가 두 부분으로 찢어져 있고, 그 두 부분은 서로를 적대시 한다는 걸 수시로 아주 분명하게 느꼈다.
─ 위화, 『가랑비 속의 외침』

성(性)에 눈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무렵, 자신이 ‘찢어져’ 있다고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이상야릇한 ‘밤’의 욕망과 그로 인한 당혹스러움은 성장을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여덟 명의 10대 소년소녀들이 겪는 성장담을 폭발적인 모던 록 리듬에 버무려 풀어간다. 밴들라는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려달라고 엄마를 조르고 한센은 부모님 몰래 화장실에 숨어 자위를 한다. 소심한 모리츠는 밤마다 하늘색 스타킹이 나오는 꿈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멜키어는 그건 모두가 겪는 과정이라며 모리츠에게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린 성에 대한 소책자를 선물한다. 이로 인해 모리츠의 고민은 혼란과 흥분으로 더욱 증폭되고 만다. 그리고 멜키어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우리의 수치심은 전부 교육 때문이다.”

프랑크 베데킨트의 원작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189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배경은 19세기 독일이지만 이들의 고민은 2009년 한국 청소년들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부모님들은 성에 대해 말해주기를 피하고 학교는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오래된 비디오 한 편으로 성교육 시간을 마친다. 성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은폐된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체적으로 공유하는 불확실한 정보들뿐이다. 이렇게 어른들이 마치 ‘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할 때, 멜키어의 주장은 타당성을 얻는다. “우리의 수치심은 전부 교육 때문이다.”

작품의 후반부, 그런 어른들의 태도에 반발하며 성에 솔직하고자 했던 멜키어가 밴들라의 임신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는 대목은 씁쓸하다.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던 그 역시 아직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당하기엔 어린 아이일 뿐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런 멜키어를 감싸줄 어른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어른들도 한때는 모리츠였고 멜키어였다. 처음 맛보는 흥분에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고 반항심에 불탔을 것이다. 그러나 그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는 ‘어른’이 되어 자신이 당한 방식 그대로 아이들의 욕망을 부정하고 억압한다.

“난 아프게 될까, 넌 슬프게 될까.” 멜키어와 밴들라가 서로의 몸을 탐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다. 자유롭지 못한 사춘기의 성은 그렇게 아프고 슬플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를 받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수위가 예상보다 높았는지,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 관객이 공연장을 나서며 친구에게 말한다. “재밌는데, 미성년자들이 보기엔 좀….” 어느새 우리도, ‘미성년자’들의 성을 규율하는 ‘어른’이 되고 만 걸까.

정지민 기자 anyria@yonsei.ac.kr
자료사진 스프링 어웨이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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