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중미술과 한국적 정체성의 혼합, 그 결과물은?

먹물과 아크릴, 아이콘과 캐릭터, 민화와 만화. 서로 합쳐질 수 없는 관계일까? 다양성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분법적 구분이란 ‘무(無)쓸모’스런 틀처럼 보인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해체하며 참신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나 이들의 작품에는 ‘팝적인(popular)’ 느낌이 강하게 녹아 있다.

팝적인 요소는 앤디 워홀의 작품과 같은 ‘팝아트(pop art)’에서 쉽게 느껴진다. 팝아트는 대중성과 복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 사조로 지난 1960년대 미국에서 전성기를 이뤘다. 초기 팝아트 작가들은 상위층만을 위한 기존 미술에서 탈피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르를 구축했다.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다양한 색으로 찍어내 낯선 이미지로 만들듯 팝아트는 대중문화 속의 만화, 유명스타, 일상용품 등의 이미지를 변용한다.

서양권에서 40여 년 전부터 지속된 팝아트는 현재 아시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대중문화가 활성화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팝아트가 등장한 나라다. 일본 팝아트는 만화와 섬세함을 특징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은 급속한 자본의 유입과 함께 팝아트가 등장해, 지난 1960~70년대의 정치적 격변을 소재로 삼아 표현하고 있다.

이동기, ‘아토마우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이런 팝적 요소를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기반으로 재해석해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팝아트는 지난 1990년대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즈음 이동기 작가는 ‘아토마우스’ 작품을 선보여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받는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아토마우스는 얼굴은 미키마우스지만 아톰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짬뽕’ 캐릭터다. 회화에 갑자기 등장한 아동스러운 캐릭터에 관람객들은 낯설어 했다. 하지만 귀여워 보이기만 한 겉모습 뒤에는 따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에 번갈아 노출되며 성장한 한국 젊은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작가의 고민이다.

손동현, ‘막강 이인조 술액 동기도’

한편 팝적인 요소를 전통회화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손동현 작가는 한지에 수묵채색을 이용해 전통적 구도의 초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마이클 잭슨, 배트맨, 슈퍼맨 등 대중매체에서 쉽게 접하는 인물들이다. 손 작가의 재치는 기법과 소재의 낯선 결합에서 뿐 아니라 작품의 제목에서도 빛을 발한다. ‘막강 이인조 술액 동기도(莫强 二人曹 述厄 童奇圖)’. 영화 『슈렉』의 주인공 슈렉과 동키를 소재로 한 작품의 제목이다. 손 작가는 다른 작품들도 이처럼 외국어를 한자로 음독해 제목을 써 내린다.

권기수, ‘동구리’

기존 브랜드나 대중문화 속 이미지보다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창조해 팝적인 작품을 내놓는 작가들도 있다. 권기수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만화 캐릭터 같은 ‘동구리’를 등장시키면서 원색의 색채를 활용했다. 전통적인 동양화처럼 보이진 않지만 작품 안에 대나무, 매화, 색동저고리 등의 모티프가 녹아있어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팝적인 요소를 다채롭게 다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작가 외에도 다양한 작가들이 유럽, 미국 등지에서 초청받아 전시회를 열었다. 국내 미술계의 관심도 높다. 인사동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제3회 인사 미술제(http://blog.naver.com/insaart2009)’에서는 ‘한국의 팝아트’를 주제로 삼았다. 이번 미술제는 지난 18일부터 24일(화)까지 열려 국내 유명 작가부터 신진 작가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커져가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코리안 팝’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서양의 팝아트를 재생산해내는 유사팝아트에 그친다는 비판이다. 권 작가는 “사실 팝은 서양문화의 산물로, 이를 따라하기보다 우리 고유의 시각으로 기존 인식을 해체해 온전한 재해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서양의 팝아트와 비슷한 점이 많이 엿보인다. 하지만 서양의 팝을 그저 삼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해학과 재치, 동양적 기법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섞어 고유한 작품세계를 조금씩 뱉어내고 있다.

양준영 기자 stellar@yonsei.ac.kr
자료사진 갤러리 투, 권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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